시선

타인이라는 굴레

by 숨은결



앨리스 먼로 <시선> 리뷰


소녀는 어느 순간 엄마의 말이 모두 정확하지 않다는 것을 감지했다. 이전까지 몰랐던 엄마의 권위주의나 자신에 대한 다른 생각들, 엄격함 등은 더 이상 소녀에게 큰 잣대로 작용하지 않았고, 자신도 느끼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녀는 그녀를 돌봐주러 집에 온 세이디를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말이 통할 뿐만 아니라 혼자서 춤추러 가는 자신만의 세계가 존재했다. 늘 일상에서 만나는 익숙한 사람이 아닌 낯선 사람의 존재는 소녀에게 그 자체로 새로웠으리라. 소녀는 다른 세계를 조우하게 된 것이다.

소녀는 세이디를 무척 잘 따랐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흥미진진했다. 소녀의 생활에 즐거움을 안겨 준 세이디는, 혼자서 춤추러 간 어느 밤에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소녀는 세이디가 정말 죽었는지를 실감하지 못했다.

어느 오후 소녀는 왜 가는지도 모른 채, 엄마의 손에 이끌려 무작정 외출하게 되었다. 그녀가 간 곳은 다름 아닌 세이디의 집이었다. 그곳에는 세이디의 부모, 장례를 주관하는 사람도 이미 와 있었다. 소녀의 엄마는 애도를 표하며 잠시 그곳에 머물렀다. 그렇게 소녀는 강제로 관속에 누운 세이디를 마주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처음에 소녀는 세이디가 죽었다는 걸 느끼지 못했고, 세이디의 얼굴을 정면으로 쳐다보지 못했다. 그러다가 세이디의 얼굴에 눈길을 멈췄을 때, 세이디의 눈꺼풀이 조금 들어 올려지는 걸 발견했다. 소녀는 자신이 보는 것이 현실이라고 자각하고 있었을까? 소녀가 세이디의 눈을 쳐다보는 이 장면은, 내게는 마치 세이디가 소녀와 인사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너는 잘 지내고 있어? 이제 나는 옆에 없지만, 지금 나와 눈을 마주친 걸 잊지 마. 그동안 즐거웠어.”라고 말하는 것처럼 읽혔다. 소녀는 자신이 세이디의 죽음을 더 이상 부인할 수 없을 때까지, 그녀와 있었던 이야기를 믿고 있었다.

세이디라는 이름을 본 순간, 난 신화 속 캐릭터를 떠올렸다. 유혹하는 뱀이었던 것 같다. 신화에서는 부정적 이미지였다. 하지만 그런 신화 속 이미지와 의미는 이 작품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시선>의 세이디 역시 사람들에게는 부정적이고 결코 해서는 안 될 행동을 전파하는 역할로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세이디는 혼자서 춤추러 가는 취미를 즐기는 여자였다. 그 클럽은 온통 커플들만 있었기에, 혼자인 세이디는 눈에 띄었다. 사람들은 조롱하는 눈빛을 보냈으나 그녀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혼자 춤추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가를 더 체감한 게 아니었을지. 그녀의 취미는 사람들에게 수용되지 않았다.


여자가 남자를 대동하지 않고 혼자서 춤을 추는 것은 불편한 시선과 수군거림과 조롱을 견뎌야 하는 일이었다. 결국 세이디는 죽음을 통해 비로소 부모의 걱정하는 시선, 사람들의 조롱하는 시선, 감시하고 평가하는 시선에서 벗어났다. 이로써 소녀의 부모도 안심했다.

세이디의 죽음은 소녀의 성장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사람들에게는 안도감을 주었다. 그렇다면 세이디는 더 자유로워졌을까? 세이디가 소녀를 마주한 순간 눈꺼풀을 들어 올린 그 장면은, 지금 이런 내 생각의 장면과 정면으로 부딪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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