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저장된 목소리들은 누구의 것일까.
이야기 속의 화자인 소녀는 엄마와 함께 참석한 댄스파티에서 지금까지 자신이 알던 것과 전혀 다른 세상을 알게 되었다. 여자들의 외모를 평가하는 습관을 가진 소녀는 오렌지색 드레스를 입은, 뚱뚱하지만 아주 세련되고 우아하게 춤추는 여자를 보게 되었다. 세상에 그런 사람도 존재한다는 사실에 소녀는 충격을 먹었다. 알고 보니 그 여자는 타운에 살고 있는 매춘부였다. 하지만 소녀는 그 여자를 ‘나쁜 여자'라고 부른다. 왜 소녀는 그렇게나 놀랐을까?
소녀는 엄마보다 아버지가 더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엄마는 고압적이고 문법을 따지는 분으로 교사 출신이었다. 가장 좋은 옷을 입고 파티에 간 엄마는 누구와도 어울리지 못한 채 겉돌았다. 소녀는 어느 날부터 집에 친구를 초대하지도 않고, 잘하는 암송도 더 이상 하려고 애쓰지 않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소설 초반에 소녀가 그렇게 된 원인을 알 수 있는 이야기는 표면에 드러나지 않았다. 이 나이의 소녀가 할 법한 생각은 아니었다.
집에 가자는 재촉에 코트를 가지러 가다가 계단참에서 멈춘 소녀는, 페기와 남자들을 봤다. 페기는 계속 불평을 쏟아내고 찡얼거리는 게 주특기로 보이는 여자인데, 신기하게 그녀를 둘러싼 남자들은 모두 한결같이 ‘괜찮아'라고 말하면서 달래주고 있었다.
소녀의 눈에 전혀 예쁘지도 않은 페기라는 여자는 달리 주목할 만한 점이 보이지 않았는데도, 왜 남자들은 그녀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건가. 소녀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지만, 남자들의 ‘괜찮다'라고 말하는 그 목소리들은 소녀 귀에 남아서 떠도는 말이 되었다. 그 목소리들은 내내 남아서 그녀를 지탱하는 말처럼 작용했다. 하지만 전쟁이 발발하고 목소리들은 떠났고 영영 돌아오지 못한 채 멀어지기도 했다.
작품에서 소녀는 그 목소리에 힘을 얻은 것 같다. 소녀는 고압적이고 문법을 따지는 엄마의 영향을 받으며, 여자들의 외모를 평가하는 것을 내면화했다. 또 엄마로부터 괜찮다는 말을 들은 경험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파티장에서 본 오렌지색 드레스를 입은 그 여자가 충격을 준 것은, 아마 여태 자기가 상상하지 못한 모습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름답고 예쁘다는 평을 받을 만한 기준에서 벗어났음에도, 그 여자는 세련되고 우아했다. 비록 뚱뚱했지만.
소녀는 외모를 판단하는 기준은 가지고 있었다. 그 나쁜 여자를 보고 보이는 것과 다른 세상이 존재하는 경험도 했다. 하지만 거기에서 그친 채, 자신만의 기준을 세우지 못한 채 자랐던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타인의 외모만 보고 평가하듯, 자신에게도 세상의 좋아 보이는, 혹은 그럴싸한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하고, 괜찮다고 말해 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 남자들의 목소리는 꽤 오랜 시간 그녀의 마음에 남아서 환상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 환각처럼 보였으리라.
소녀가 자신에게 엄격하고 평가에 민감한 사람이 된 것은 새삼스럽지 않다. 나 또한 자신에게 엄격하고 다소 가혹하게 몰아붙이는 면이 존재한다. 소녀에게 공감할 수 있었다. 자라면서 세상을 경험하고 성장하는 동안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나 스스로에게 관대해진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자신에게 괜찮다는 말 한마디 하는 건 아주 단순하고 쉬운 일인데도 왜 그렇게 어색한 일이 되었는지.
우리는 누구나 내면에 다양한 목소리들을 보유하고 있다. 내 목소리 외에도 내가 존경하는 혹은 내가 부정하는, 좋아하고 싫어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자동 저장하는 기능을 활용하는 것 같다. 굳이 자동 저장 기능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건만, 습관처럼 버리지 못한다. 하지만 이제 꼭 다시 듣고 싶은 목소리가 아니라면, 과감하게 삭제 버튼을 눌러도 되지 않을까?
당신이 자주 듣는 목소리는 누구의 목소리인가? 그 목소리는 당신을 더 괜찮게 만들어 주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