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건너온 소녀
(이 글은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들을 소재로 썼습니다.)
여자는 미래에서 왔다. 얇은 원피스 한 장만 두른 채, 어떤 동네에 도착했다. 그녀의 눈에 펼쳐진 눈앞의 풍경은 탁 트였다. 집은 드문드문 있어서 사람의 행적도 찾기 어려울 것 같았다. 저 멀리 하늘에는 달이 보인다. 이제 주위에는 어스름한 달빛이 내려앉았다. 하지만 그녀는 앞을 향해 바라보기만 할 뿐 도통 움직일 생각은 없었다. 저녁 바람에 그녀가 입은 원피스 자락이 살랑거리는 소리만 귀에 스칠 듯 들려올 뿐.
그녀가 온 미래는 온통 파랗다. 하늘은 365일 파란색으로 뒤덮였고, 지상과 지상 위에는 온갖 것들이 떠다니고 있다. 그중 가장 볼 만한 것을 꼽으라면, 광장 한가운데 솟아있는 커다란 역삼각형 기둥 위에 올려진 손이었다. 정확하게는 손의 모양을 한 동상이었다. 그 동상의 겉은 새빨간 색으로 칠해져 있고, 손가락 사이에는 핏줄처럼 보이는 파란색 선이 그어져 있었다. 왜 손이 그런 형상을 하고 있고, 이곳에 어떤 의미를 주는지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는 게 이곳 사람들의 공통점이었다. 공중에 떠다니는 것들로 말하자면, 다양한 모양의 조각들, 토르소 모양의 장식품, 투명한 사람 모양을 한 인형들이 있다. 이외에도 더 많았다. 그것들 중에는 손에 잡히는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다. 또 대다수는 홀로그램으로 제작되어 있다. 바다와 바다 끝에 보이는 산, 바닷물도 모두 파란색이라서, 때로는 개별적인 구별이 되지 않을 때도 있었다. 사람들은 그 모든 풍경을 한 덩어리처럼 수용했다. 개별로 구분하거나 나누려고 애쓰지 않았다.
그녀는 무언가를 찾으려고 세계를 건너왔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이런저런 일들이 많았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는 누구나 일생에 한 번 찾아가는 곳이 있었다. 그곳은 커다란 형상의 남자가 거대한 스케일로 공간을 온통 차지하고 있었다. 평범한 남자가 아니다. 그 남자는 몸통이 없다. 광장 공중에 떠다니는 토르소가 마치 그의 몸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게다가 남자는 공중에 떠 있었고, 남자의 이마에는 죽은 사람의 것으로 보이는 회색빛의 금속 손이 떡하니 올려져 있다. 그의 어깨에도 손은 또 있다. 또 그의 얼굴 옆에는 늘 대신 입을 놀리는, 문어처럼 보이는 머리가 달려 있었다. 도대체 이 남자에게 어떤 능력이 있는지 다 아는 사람도 없고 애초부터 거기에 그렇게 자리하고 있다는 것만 알려져 있다. 그녀도 일생 처음으로 그 남자가 있는 곳을 방문했다. 이 세계에 오기 위해서 말이다.
공중에 떠 있는 그 남자는 무표정했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르지만, 남자의 몸통 바로 아래에 또 다른 손이 숨어 있다. 자기가 원하는 바를 종이에 써서 그 손에 쥐여주기만 하면 된다. 이유 불문하고 소원을 딱 한 번 들어준다. 하지만 소원을 되돌리지 못한다. 설령 그 소원으로 인해 목숨을 잃는다고 해도 말이다. 이런 이유로 살아서 돌아가지 못한 이들도 종종 있다. 운 좋게도 그녀는 살아서 소원을 이루고 다른 세상으로 올 수 있었다.
한참을 언덕에 서서 응시하던 그녀는 왼쪽에 보이는 길게 위로 뻗은 건물이 있는 곳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 건물은 단조로웠다. 누가 살 집이라고 해도 분명 부자는 아니리라. 허름한 모습으로 덩그러니 놓여있는 듯했다. 그녀가 찾는 것이 저기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만 된다면, 그녀는 가벼운 마음으로 집에 갈 수 있다.
몸이 가벼운 그녀는 삼십여분 정도 걸어서 목적지에 도착했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잠시 문고리를 응시하던 그녀는 손을 뻗어 문고리를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닫힌 문을 열자, 노란빛이 그녀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외관은 초라하기 짝이 없던 건물 내부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그녀 앞에는 물기둥이 솟아 있고 그 위에 손인지 산인지 구분이 안 될 동상이 있었다. 그녀가 보기에는 손이었다. 손가락 끝에는 동그란 무언가가 위태롭게 흔들리며 빛나고 있었다. 잠시 그 광경에 넋을 잃고 쳐다보던 그녀는 정신을 차리고 물기둥 옆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걸음을 옮기던 그녀는 눈동자가 없는 눈과 마주쳤다. 그녀가 본 눈은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지만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눈의 주인은 온통 검은색 피부를 한 인물이었고 몸과 몸통이 각각 존재하는 이들을 껴안은 채였다. 그 몸들은 서로 포개진 듯 껴안고 있었지만 어떤 몸은 다리만 존재했다. 너무 기괴한 모습에 꼼짝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찾아야 하는 게 있었다. 그 목적만이 그녀를 움직이게 했다.
한참 앞으로 걸어가니 저 앞에 지평선과 그 위에 뜬 태양이 보였다. 바로 앞에 영화에나 나올법한 노란빛에 둘러싸인 커다란 두상과 그 두상을 받치고 있는 투명한 벽에 박힌 보석이 보였다. 그 보석이야말로 그녀가 이곳에 온 이유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저 보석을 가져가야 했다. 하지만 그 두상 앞에는 머리 없는 몸통, 흰색 말, 닭벼슬처럼 보이는 꼬리를 길게 달고 있는 인간의 모습을 한 새들이 있었다. 그들 모두 침입자인 그녀를 지켜보고 있다. 이곳에 들어선 순간부터 찌를 듯한 시선이 느껴졌다. 아, 이제 어떻게 이곳에서 저 보석을 가지고 무사히 갈 수 있을까?
그녀 외에 그 공간에는 어떤 움직임도,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일단 커다란 두상 앞까지 가 보았다. 하얀색의 토르소가 두상 앞에 있었는데 멀리서 볼 때와 다르게, 토르소는 머리가 없는데도 희한하게 몸을 구부린 채였다. 그로 인해 토르소 앞에는 길게 그림자가 생겼다. 길게 뻗은 그림자는 두상 아래의 투명한 받침대에 문을 만들었다. 게다가 투명한 벽에 박힌 줄 알았던 보석은 실제가 아니었다. 홀로그램이었다. 그림자 문에는 손잡이가 없었지만, 그녀는 문으로 몸을 통과시켰고, 순식간에 투명한 벽 안쪽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오! 그 내부는 여태 그녀가 미래에서도 본 적 없는 풍경을 하고 있었다. 그 공간 전체가 여자의 얼굴이었다. 맙소사! 그녀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은, 바로 그 소원을 들어주는 남자의 얼굴 옆에서 입을 놀리는 듯한 표정을 한 문어처럼 생긴 머리였다. 남자의 형체가 너무 크고 기괴해서 문어처럼 생긴 머리의 얼굴까지 자세하게 보지 못했지만, 그녀는 알 수 있다. 바로 앞의 거대한 공간의 형상은 바로 그 문어머리였다.
저 멀리 보석이 보였다. 지금껏 그녀는 보석에 관해 전체적인 모양과 색상 정도만 알고 있었다. 실제로 그것이 무엇인지는 전혀 몰랐다. 하지만 이제 어떤 물건인지 똑똑히 보였다. 다름 아닌 알람시계였다. 왜 내게 저 시계를 가져오라고 했을까? 저 시계에는 어떤 힘이 숨겨져 있는 건지 궁금했다. 그런데 시계가 놓인 뒤쪽에 두 개의 그림이 벽에 걸려 있었다. 그 액자에는 풍경처럼 보이는 눈이 그려져 있었는데 각각 다른 내용의 작품이었다. 왼쪽에 보이는 액자의 눈은 빛나고 있다. 액자 안에는 높게 뻗은 탑이 그려져 있고 주위가 온통 시커멓다. 오른쪽 액자의 눈에는 마치 천둥번개가 치는 듯한 그림이 그려져 있고 검은빛이 몇 줄기로 쏟아지는 듯한 모습이었다. 두 개의 액자는 모두 빨간색 벽에 걸려 있었다.
그녀는 무심코 발을 안쪽 공간으로 내딛으려고 몸을 앞으로 숙이려다가 공중에 발을 띄운 채 멈췄다. 그녀가 몸을 움직이자마자, 알람시계가 요동치기 시작했고, 액자 눈에서는 검은빛이 일렁였다. 아,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이대로 발을 디뎌서 저 시계를 가로챌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다. 심장이 마구 뛰고 있었다.
엇. 그런데 시계가 놓인 곳 앞에 금색으로 덧입힌 입술 모양의 소파가 있었다. 뜬금없이 소파라니! 이 공간에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소파는 온통 새빨간 색으로 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순간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소파 앞으로 몸을 옮겼고, 의자에 몸을 실었다. 세상에, 소파는 너무나 편안했다. 소파에 앉은 그녀는 너무나 행복한 기분에 휩싸였다.
그렇게 1분 정도 흘렀을까. 갑자기 그 공간이 마구 흔들렸다. 그녀는 소파의 위쪽을 힘껏 잡고 떨어지지 않으려고 버텼다. 처음에는 당황해서 속절없이 몸이 종잇장처럼 흔들려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시계를 손에 넣어야 했고, 흔들리면서도 시계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때 그녀의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고, 그녀의 몸은 시계가 놓인 곳을 향해 앞으로 기울어졌다. 이때다 싶은 그녀는 몸을 힘껏 앞으로 당겨서 시계를 잡았다. 그녀가 손에 시계를 넣자마자, 지지난 듯 흔들리던 공간은 마치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움직임을 멈췄다.
그녀가 놀랄 새도 없이 정신을 차리자, 아까 이곳에 처음 도착했던 그 낮은 언덕에 누워있었다. 언덕 위의 풍경은 처음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고요했다. 어스름만 더욱 짙었고, 사방에는 여전히 어떤 인기척도 없었다. 그녀의 손에 쥐어진 시계는 아직 울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