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랗고 시린 하늘의 세부사항
요즘 올가 토가르추크의 <다정한 서술자>, 나보코프의 <말하라, 기억이여>, 그리고 제임스 우드의 <인생에 가장 가까운 것>을 같이 읽었다. 챕터별로, 혹은 연속으로 읽는 중에 교차하는 지점이 있어서 기록을 남긴다.
문학을 읽을 때, 나는 점점 감정을 먼저 묻지 않게 되었다. 무엇을 느꼈는지보다, 무엇이 그렇게 보였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제임스 우드를 읽으며 확신하게 된 것은, 좋은 소설은 감정을 설득하기보다 세계의 세부사항을 끝까지 놓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먼저 나보코프의 책은 꽤 색다르다. 작가가 서술하는 내용이나 어조 등에서 그 사람의 개성이나 특징이 엿보인다. 나보코프는 무척 경쟁심이 세고 자기만의 성을 완성하고 고집하는 사람이라는 언급이 다른 작가들의 책에 언급되고 있다. 그럼에도 개인적으로는 그의 세밀한 관찰이나 문체 등이 마음에 든다.
특히 3장은 나보코프의 집안 내력이 세세하게 서술되고 있다. 처음에는 어? 하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문득 마태복음이 생각났다. 성경의 신약 첫 책인 마태복음은 1장부터 예수님의 족보가 기록되어 있다. 말 그대로 이름들의 연속성을 실감하는 장이다. 그런데 나보코프의 책 3장도 아주 자세한 집안의 역사가 쓰여 있다. 또 그런 와중에 이 사람은 매우 사소한 것들을 기억해서 적고 있는데 가령, 선반 위의 도자기 고양이 열 마리, 체커판 모양의 판석 등이다.
그런데 제임스 우드의 <인생에 가장 가까운 것> 2장이 앞서 언급한 나보코프의 이야기와 연결된다. 2장의 제목은 진지한 관찰이다. 2장의 키워드는 세부사항이다. 작가는 '세부사항이란 언제나 누군가의 세부사항이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세부사항의 총집합으로 표현된다는 말도 있다. 나는 제임스 우드의 책에서 세부사항을 접하면서 동시에 나보코프가 떠올랐다.
마지막으로 세부사항에 대해 작가는, '세부사항이란 지극히 자기의식적이며 동시에 자기 지양적이다'라고 했다. 쉽게 말하면, 우리는 누구나 나를 드러내고 싶어 하는 동시에 전체 속에 한 부분으로 남고 싶어 한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와 관련해서 경험한 바를 적으면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전철을 타고 오고 가는 도중에 내가 목격한 풍경의 세부사항이 있다. 요 며칠 굉장히 추웠는데 꽤 얇은 바지나 재킷을 입고 가는 이들을 봤고, 수업하러 온 학생이 맨발과 반팔에 패딩을 입고 있었다. 나는 문득 왜 그렇게 춥게 입었을까라고 스치듯 생각했다.
또 겨울에 도쿄를 갔는데 시내에 다니는 여성들이 스타킹도 신지 않은 채 돌아다니는 모습을 본 기억도 함께 떠올렸다. 그때도 무척 춥겠다고 생각하면서 지나갔었다.
희한하게 내가 읽은 책들이 하루의 일상에 점으로 연결되듯 쭉 이어졌다. 그렇게 춥게 입은 듯한 사람들의 풍경을 뒤로하고 전철에서 나왔을 때 하늘은 무척 파랗고 시린 느낌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