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토하고 싶다

by 파란 해밀




( "토할 吐, 토익의 변신"에 이어)



여행은 내게 뜻하지 않은 선물이었다.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한동안 우울증에 빠져 어찌하지 못하고 있을 때, 삶이 송두리째 허무해서 말라비틀어진 무처럼 안으로 쪼그라들고 있을 때, 여행은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해 준 처방전 같은 것이었다.


중학생 때 본 사진 한 장에 이끌려 꼭 가고 싶었던 마추픽추를 40년 만에 찾았을 때나, 자연이 이제 막 낳은 듯한 이스트섬의 풍광에도 가슴 떨렸지만,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곳에 혼자 떨어져 있으면서 살아볼 이유가 소름처럼 돋았던 것이 내겐 더 중요한 의미였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을 찾아가는 불안한 여정에서 현실의 나를 보는 듯했고, 여행을 하면서 그동안 몰랐던 세상으로 조금씩 걸어 들어갔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올 때 살 떨리는 희망을 품었고, 떠나기 위해 돌아왔고, 돌아와서는 또 떠날 채비를 했다.





photo-1609410268177-ab7f58978947.jpg © stpxn, 출처 Unsplash





늙어가는데도 용기가 필요하다 했던가? 그런 책 제목을 보았을 때, 나이가 들면 저절로 늙는데 무슨 용기까지 필요한 거야?라고 생각했던 젊은 날이 있었다. 정신없이 살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낯선 중년의 아낙이 나를 보고 있었다. 어느 틈에 나도 많이 늙어 있었다. 그런 나를 받아들이데 적지 않은 용기가 필요했고, 어이없지만 늙어가는데도 준비가 필요했던 것이다.

때늦은 용기를 내보았지만 다 채워지지 않는 헛헛함은 어쩔 수 없이 남아 있었고 그것은 내가 품어야 할 몫이었다. 늙어가면서 함께 따라오는 인생의 서글픔을 낯선 곳을 혼자 여행하면서 털어냈다. 생경함에서 오는 긴장이 밀어낸 것일 수도 있고, 새로운 세상의 호기심이 그 자리에 들어찬 것일 수도 있다. 어쨌든 그럴 때마다 또 다른 세상을 알고 싶었고, 나는 그런 것들에게 많이 들떠했다.

머잖아 맞이할 퇴직 후에는 시간에 쫓기지 않는 여행을 하고 싶다. 그동안 한 치의 빈틈도 없이 계획하고, 쪼개고, 붙이고 하던 틈바구니에 억지로 나를 구겨 넣으며 살았다면 이제는 발 닿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풀어헤치고 싶다. 그 아찔함을 느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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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몰타에서 6개월 정도 어학연수를 계획 중이다. 긴 여정을 떠나기 앞서 영어를 좀 더 탄탄하게 잡아보고 싶다는 의도도 있지만 세계 여행 전 워밍업의 의미도 있다. 얼마나 체력이 따라줄지, 코로나는 또 얼마나 나를 이해하고 협조해 줄지 많은 변수들이 눈앞에 있지만,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은 도전인 것은 분명하다.

생각해 보면 감히 혼자 세계 여행을 해보겠다고 꿈꿀 수 있는 것도 그 토 나오던 토익이 시발점이 아닐까 싶다. "노니 염불 한다"라고 자격증이나 한 번 따 볼까? 하고 시작했던 영어 공부가 그 이전에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꿈을 품을 수 있게 했다.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것이 허망해서 털썩 주저앉아 있던 나를 일으켜 세운 것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면 토익이라 할 수 있겠다. 누구나 한 번쯤 접해 보았을 토익, 시험을 치고 나면 새카맣게 고사장을 빠져나오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 토익의 의미는 그저 점수에 불과할지 모르겠으나, 내게는 점수 그 이상의 가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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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때로는 뜻하지 않은 사소한 것이 중요한 인연이 되기도 하고 삶의 좌표를 바꿔 놓기도 한다. 시작의 각은 참으로 미미한 것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벌어지는 각도는 예상하지 못한 위치에 우리를 서 있게 한다. 이러니 어찌 매 순간이 소중하지 않고, 매 순간 나를 다 쏟아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가 머물러 있는 지금은 그동안 살아온 삶의 성적표인 것 같다. 내가 서 있는 현재를 보면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 수 있고,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보면 미래에 나는 어디에 서 있을지 알 수 있는 바로미터 같은 것이다.

그 바로미터 위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는 삶의 보드를 타고 이제는 나를 제대로 토해내고 싶다. 나를 제대로 마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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