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아끼던 직장 후배는 가족과 함께 시골로 이사를 갔다. 근처에 살고 있는 여동생 네를 다녀와서 "우리도 거기 가서 살까" 하고 슬그머니 꺼낸 말이 불씨가 되어 후다닥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진행되었다. 그녀는 육아휴직을 하고, 남편은 매일 고속도로 왕복 2시간 이상을 달리는 곳임에도 개의치 않고 부산을 정리해서 떠났다.
주변에서는 다들 의아해했다. 어쩔 수 없는 인사이동 때문도 아니고,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것도 아닌데 단지 느긋해 보이는 여동생의 시골생활이 보기 좋아 하루아침에 생활 터전을 바꾸는 것이 결코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남편은 전라도에서 대전까지 매일 출퇴근을 해야 하는 부담을 안으면서까지 한 결정이라 더욱 그랬다.
그러나 그러면서까지 옮기고 싶은 절실한 이유가 그들에게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사를 하고 나면 큰 딸은 초등학교에 입학을 해야 했다. 시골이지만 아파트라 단지 내에 학교가 있지만, 좀 더 좋은 학교로 보내기 위해 차로 20분가량 가야 하는 곳에 딸을 입학시켜서, 매일 등하교를 시켜줘야 한다는 소리에 나는 웃고 말았다.
"넌 도시를 떠나 여유로운 시골에서 아이들을 자유롭게 키우고 싶어 간다면서 생각은 여전히 도시녀인데?"
"하하하! 그러게요"
도시가 싫어서 떠나면서도 도시의 경쟁력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 두려웠을까? 그녀는 복직 후에 감당할 일보다는 지금 당장 눈앞에 보이는 교육 여건에 마음이 더 기운 것 같았다. 아마도 아직은 완전히 도시를 벗어나지도, 그렇다고 시골에 완전히 속하지도 못한 그 중간 어디쯤 있는 것 같았다.
나 역시 퇴직 후에는 조용한 곳에서 생활할 곳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큰 오빠는 살고 있는 함양이 좋다며 오라고 하지만 그곳까지는 자신이 없다. 나이가 들수록 병원과 가까운 도시에 살아야 한다는 말도 나름 일리가 있는 소리이니 무턱대고 시골로 들어갈 수도 없는 일이다. 부산에서 1시간 안으로 움직일 수 있는 곳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가까운 곳을 가끔 눈여겨보고 있었다.
당장 급한 일이 아니니 마음에 두고만 있었는데 우연찮게 집에서 차로 40분 거리에 있는 교외에 아파트 분양이 있어 구경 삼아 갔다가 덜컥 계약을 하고 돌아왔다. 인터넷에서 몇 만 원 하는 물건을 사도 이리저리 따져보고 사는데 그날은 뭐가 씌었는지 내 생애 최고의 사고를 치고 돌아왔다.
설렁탕에 밥 말아먹듯 순식간에 아파트를 계약해놓고 돌아와서 내가 제정신인가? 하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이 나이 먹도록 아파트 청약을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덜렁 집 한 채를 주문(?)해 놓고 왔으니 며칠 동안 잠을 설쳤다.
건설 현장에는 이미 다른 아파트들이 다 들어서 있었고 적당한 인프라도 갖추어져 있었다. 근처에 체육센터도 있어 즐겨하는 수영도 가능하고 무엇보다도 조용한 동네 분위기가 나를 많이 흔들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이따금 나를 들쑤셔대는 것들이 있었다.
'지금처럼 무작정 나가 불쑥 영화 한 편 보고 올 수 있을까?'
'듣고 싶어 하는 다양한 강의를 하는 곳도 있을까?'
'배우고 싶은 것들, 입맛대로 배울 수도 있는지......?'
'그러기 위해 너무 멀리 나가야 하는 건 아닌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내가 참 어이없었다. 나도 그 후배와 똑같았다. 도시를 떠나고 싶어 하면서도 도시 같은 시골을 원하고, 도시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을 시골에서도 똑같이 누리고 싶어 하는 이중적인 선택의 기대를 범하고 있었다. 어쩌면 나는 아직 도시를 떠날 준비가 안 되었거나, 그렇지 않으면 익숙한 이 자리를 벗어날 용기가 없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것저것도 놓치고 싶지 않고, 이것저것 다 쥐고 싶은 욕심만 한 보퉁이 덩그러니 내 안에 내동댕이 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