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남편의 바람 냄새"라는 제목으로 글을 쓴 적이 있다. 그 글을 찾은 사람들의 유입 경로가 뜻밖에도 "남편의 바람", "남편이 바람피울 때" 등 배우자의 외도로 들어온 경우가 많이 있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몇 번 그러다 말겠지 했는데 그 후로도 계속 남편의 바람으로 검색한 사람들이 그 글을 많이 찾았다. 이중적인 의미가 깔리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남편에게서 나는 겨울바람 냄새가 모티브였는데 의도치 않게 제목이 낚시글이 된 셈이었다.
그들은 답답한 심정에 무언가 갈피라도 잡을 심정이었을 텐데 그렇지 못한 글을 읽고 허탈한 심정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같은 이유로 글을 찾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나고 그들의 족적이 남겨질 때마다 글이나 제목에 대한 책임감을 무겁게 느꼈다. 더하여 그들이 짓눌려 있을 마음의 무게가 가히 어느 정도일지 검색한 단어를 통해 전기처럼 찌르르 전해지는 듯했다.
다들 뜨겁게 사랑해서 결혼하였을 터인데 그 사랑이 흔들리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상대를 처음 만났을 때 살 떨리던 그 설렘은 해마다 돌아와 피는 한여름 붉은 달리아처럼 선명한데, 그런 일은 아예 있지도 않았던 것처럼 잊어버리고 다른 곳을 바라보는 남편의 빈 등을 바라보는 아내의 심정은 그 어떤 말로 표현해야 적당할까? 남편과 아내가 반대 입장이라도 마찬가지다.
"배우자의 외도는 상대의 영혼을 죽이는 것이다"라고 할 만큼 끔찍한 일이다. 더구나 철석같이 믿었던 배우자의 외도를 겪게 되면 상대가 겪는 충격과 배신감은 외도의 달콤함에 빠져있는 사람은 상상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 독약 같은 외도에 빠지는 사람도 배우자의 영혼을 죽이고자 작정하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교통사고처럼, 순식간에 터져버린 스파크로 시작해서 이쯤이야 하고 맞았던 가랑비에 어느새 온통 가슴이 젖어들었을 것이다. 내가 했던 사랑처럼, 그들도 사랑일 것이다. 변함없이 백 년쯤은 거뜬히 갈 것 같다고 여겼던 그 사랑 말이다.......
세상에 흔들리지 않는 사랑이 있을까? 한두 번 휘청이지 않은 사랑이 있을까?
결혼은 내가 했던 사랑을 지켜주는 보호막이 아니다. 배우자의 마음을 꼭꼭 싸매 넣어두는 벽장 같은 곳도 아니다. 사는 동안 많은 사람을 만나고, 부딪히고, 헤어지면서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지 말란다고 안 할 수 있으려나?
길가에 핀 이름 없는 꽃에도 눈이 가고, 예쁜 카페가 보이면 그곳에 잠시 머물고도 싶고, 두 번, 세 번 마주치는 길고양이에도 마음이 숭덩 베인다. 이렇듯 자잘한 일렁임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단지, 그 일이 배우자에게 일어났고 그 상대가 들꽃이 아니고, 길고양이가 아니라 사람인 것이다. 내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남편에게, 아내에게 먼저 일어난 것이며, 남편과 아내가 흔들린 것이다. 어쩌면 나 역시 흔들렸을지도 모를......
그래서 그들의 흔들림에 공감한다. 내가 느꼈던 까마득한 시작의 설렘처럼, 그들이 시작하는 설렘도 충분히 이해한다. 사랑이라 말하는 당당함도 차라리 인간적인 솔직함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럼에도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은 아프다. 이해하면서도 아프다. 이해하기 때문에 더 많이 아프다.
배우자의 외도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각자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푸는 방법도 다를 것이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가치의 기준이 다르니 무엇이 정답이고, 무엇이 모범답안이다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무슨 일이든, 무엇을 하든지 모든 것에는 힘의 강약이 필요하다. 수영을 배우면서 몸의 힘을 빼라는 소리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다. 그럼에도 잘되지 않는 것이 그것이다. 정작 잘해보자고 한껏 힘을 주고 할 때는 안 나가더니, 모든 힘을 내버리듯 빼고 나니 부드럽게 잘 나가는 것이 참 어이없다. 비단 수영뿐 아니라 이처럼 잘하고자 하는 욕심, 버티겠다는 의지에서 비롯한 과한 힘이 오히려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리의 삶을 물에 빗대어 사는 동안 헤엄치듯 생각의 힘을 빼보면 어떨까? 절대적이라고 믿고 있는 생각에서 힘을 빼면 의외로 많은 것이 보이고, 그동안 알지 못한 깊이를 느낄 수 있으며, 더불어 폭넓은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젊어서는 대쪽같이 안 된다고 여겼던 배우자의 외도도 이만큼 늙어서는 그 인생의 마지막 불꽃이지 않을까 싶어 문을 나서는 그 사람의 양복 깃에 묻은 먼지를 털어주며 배웅해 주고 싶다. 그 사람의 야윈 어깨에 걸린 숨죽인 설렘에 빙긋 미소 지으며 말이다. 아파보고서야 겨우 이것 하나 얻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