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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해밀 Jun 14. 2021

자식, 부모를 담을 수 없는 그릇




지난 금요일, 친정엄마의 여덟 번째 기일이다. 어느새 8년이 지났다. 꿈에서나마 손이라도 잡아보고 싶고, "엄마~~~~" 하고 부르면 그 대답 한 번 들어보고 싶은데 엄마는 끝내 야속하기만 하다. 어쩌다 꿈에서 보아도 말이 없으니 그저 애간장만 태우다 깨곤 했다. 살아생전 자식 때문에 속을 끓여 그랬을까? 돌아가시고는 자식 속을 끓이신다.

엄마는 척추협착증으로 고생하시다가 나중에는 걷지도, 앉지도 못하고 돌아가시기 전 1년 동안은 꼬박 누워만 계셨다. 워낙 몸이 재고, 부지런해서 잠시도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지 못하는데 눈앞에 보이는 창이 세상의 전부였으니 그 고통이 어땠을지 나는 감히 알지 못했다. 그저 내가 피곤할 때 누우면 편하듯이 엄마도 그런 줄 알았다. 엄마가 얘기를 하기 전까지는......


"엄마, 하루 종일 누워 있으니까 어때?"
"처음에는 팔짝 미칠 것 같더니 그 때보다는 조금 낫네......"


별 말씀이 없어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아무 내색 않고 혼자 속으로 참아내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서 나은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체념과 포기를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제야 휠체어를 사서 바깥바람을 쐬어드렸다. 다녀와서는 "아~~~! 좀 살 것 같다" 시며 좋아하던 표정을 그 후로 몇 번 보지 못했다. 허리를 못쓰시니 휠체어에 앉을 수가 없었다. 두세 번 엄마와 함께 나들이를 했던 휠체어는 엄마가 돌아가시고도 아직 집 한켠에 남아있다.





© kevinortizdesign, 출처 Unsplash




엄마가 세상과 통한 유일한 길은 전화였다. 휴대폰도 없었으니 머리맡에 전화기를 당겨놓고 돌아가며 자식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특별한 용건도 없이 수시로 전화를 했다. 잠시 복도에 나와 5분, 10분 엄마와 수다를 떨어도 될 것을 나는 그러지 못했다. 아무 의식도 하지 못하고 훌쩍 지나는 그 5분, 10분이 엄마에게는 삶의 몸부림이었을 텐데, 나는 업무 시간에 자꾸 전화한다고 퉁을 주었다.

감금당하듯 엄마처럼 아파보지 않아서 그 절박함을 알지 못했다. 자리에 누워 지낸 시간이 1년이 되기까지 엄마가 버틴 하루하루는 모조리 송곳 같았을 텐데, 나는 그저 내가 주말에 고단한 몸을 뉘고 쉬는 것처럼 그럴 것이라고 착각했었다.

큰언니가 볼 일이 있어 집을 비우게 되어 어느 일요일 엄마를 돌봐야 했다. TV를 보다가, 엄마와 쫑알대다가, 점심을 먹고, 십자수를 놓다가, 엄마 옆에 잠깐 잠이 들었다가 일어났는데도 시간이 가지 않았다. 그때도 엄마는 그저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고 누워있었다.


"엄마, TV 안 봐?"
"재미없다"
"그럼 라디오 노래 틀어줄까?"
"아니, 시끄러워"
"그럼 심심하잖아"
"..........."


내가 온갖 짓을 다 해도 해가 중천에 걸려 있는 걸 알고서야 엄마의 느리고 무료한 시간이 어슴푸레 느껴졌다.



© mariodobelmann, 출처 Unsplash




"엄마, 뭐해?"
"..........."


점심 설거지를 마치고 안방에 들어서는데 엄마가 힘들게 앉아 무언가 하고 있었다. 내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엄마는 변을 지렸는데 혼자 일어나 속옷을 갈아입으려 하고 있었다. 막내딸에게 혹시라도 힘든 치다꺼리를 하게 할까 봐 당신이 얼른 해결하려고 했지만, 겨우 옷장 문만 빼꼼 열어 놓은 채 들키고 말았다.


"엄마, 똥 쌌어?"
"속옷만 갈아입고 나중에 언니가 와서 하면 된다"
"괜찮아. 나도 할 수 있어"
"............."
"엄마, 옷에 똥 좀 묻어도 괜찮아. 엄마만 이러는 거 아니야. 나중에 내가 수도 있고, 누구든지 늙으면 다 엄마처럼 될 수 있어. 사람이 나이가 들면 다시 아기가 된다고 하잖아. 엄마는 아기가 된거야. 내가 어렸을 때 엄마가 내 똥을 치워준 것처럼 이젠 내가 엄마 똥을 치워줄 차례야. 그러니까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애써 아무렇지 않은 듯 엄마를 안고 등을 토닥토닥했다. 엄마는 가만히 내 품에 안겼다. 앙상한 등뼈가 오히려 내 손을 아프게 했다. 언니가 올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엄마를 용을 써서 욕실로 데리고 가서 세면대를 붙들고 잠시 버티게 하고는 씻겼다. 엄마의 야윈 다리를 따라 뜨뜻한 물이 타고 흘러내렸다. 그것을 바라보는 내 얼굴에도 뜨거운 것이 흐르고 있었다.








오후 5시가 넘어서자 30분 후에 도착할 것 같다며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전화를 끊기 무섭게 엄마는 혼자 있을 수 있으니 내게 집으로 가라고 했다. 아직 아이들도 어리고, 쉬는 날 집안일도 많을 텐데 언니가 가까이 왔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가서 내 살림을 챙기라고 채근이다.


"언니 오는 것 보고 갈게"
"괜찮다. 이젠 혼자 있을 수 있으니까 가서 얘들이랑 챙겨"
"괜찮아. 조금 있으면 언니 올 텐데 그때 가도 돼"
"벌써 저녁이다. 가서 저녁도 해야지"


엄마의 등쌀에 결국 짐을 챙겼다. 현관문을 나서려는데 엄마는 한 손으로 바닥을 짚고, 엉덩이를 밀며 문 앞으로 나와 문틀에 기대앉았다.


"엄마, 왜 나와 힘든데, 나오지 마. 나, 갈게"
"응. 수고했다"
"엄마, 들어가"

차라리 보지 말았어야 했다. 뺑소니 운전자처럼 그냥 내뺐어야 했다. 말로는 간다고 했는데 차마 문을 닫을 수가 없었다. 엄마는 손을 휘저으며 어서 가라고 한다.


"엄마, 정말 간다?"
"오냐"

문을 닫았다. 한동안 문 앞에 서 있다가 다시 문을 열어보았다. 그때까지 그 자리에 그대로 기대고 앉아 내가 나간 문을 바라보고 있던 엄마와 눈이 마주쳤다. 여전히 가라고 손을 내저었다.


"엄마, 진짜 간다?"
"그래"

더 있다가는 기어코 엄마 앞에서 눈물을 쏟아낼 것 같아 황급히 문을 닫고 돌아섰다. 아직도 길게 남아 있는 여름 해가 나를 또렷이 비추 건 말건 꺼이꺼이 삐져나오는 울음을 토하며 엄마의 긴 골목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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