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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해밀 May 17. 2021

입덧 같은 그리움!




치과에서 야간 치료를 받고 나왔다. 집으로 오는 길에 치과 근처에 있는 옷 가게에 눈이 갔다. 더러 그 앞을 지나면서도 내가 즐기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그날은 우연히 가게 안쪽에 걸려 있는 속옷이 눈에 띄어 들어가 보았다. 인견으로 만든 건데 시원하고 편해 보였다. 제일 작은 사이즈를 샀는데도 나한테 좀 클 것 같았지만 크면 편하게 입지..... 하고 가져왔는데 커도 너무 크다.


하는 수없이 다른 제품으로 바꿔야 할 것 같아 다음 날 가게를 다시 찾았다. 전날은 미처 보지 못했던 매장 안의 다른 의류들을 둘러보니  문득 돌아가신 친정엄마 생각이 났다. 걸려 있는 옷들은 한결같이 알록달록 꽃무늬다. 그중에는 생전에 엄마가 입으셨던 것 같은 수더분한 꽃도 있다. 색색깔의 꽃잎이 이리저리 흔들린다. 한가득 걸린 옷이 지천으로 핀 꽃 무더기 같다.

고개를 돌리면 반대편 어디쯤에서 엄마가 활짝 핀 꽃을 입고 서 있을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피팅룸에서 "이건 어떠냐?" 하며 걸어 나오실 것도 같다. 가끔 옷을 사드리긴 했어도 엄마와 함께 가서 옷을 골라드리지는 못했다. 가슬 거리는 원단이 시원해 보인다. 두세 벌 사다 드리면 좋아하실 것 같다.





가게를 찾은 이유는 잊어버린 채 사지도 않을 화려한 꽃무늬 옷들을 훑고 다녔다. 뒤적이다보면 희미한 엄마의 체취라도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그 안에서 나를 바라보며 엄마가 빙그레 웃고 있을 것 같았다.

그리움이 입덧처럼 치민다. 미친 여자 마냥 매장 여기저기를 샅샅이 뒤졌다. 그래도 엄마는 없다. 참으려 해도 끝내 어쩌지 못하고 한쪽에 조용히 걸려 있는 검은 블라우스 앞에서 저 밑, 속에서부터 오르는 그리움을 기어이 토하고 말았다. 그것은 동그라미를 그리며 물이랑처럼 블라우스 위에 크게 크게 번져간다.

속옷과 바꾼 동그라미가 그려진 검정 블라우스를 받아 들고 터벅터벅 가게를 빠져나왔다. 걸을 때마다 동그라미가 힘없이 떨어져 데구르르 길 위에 구른다. 그리움이 굴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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