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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해밀 Apr 06. 2021

엄마의 봄날, 그때 그 자리




"에계~~~! 엄마는 그걸 남겨? 마저 먹지?"
"배가 불러서 더 이상 안 넘어가네"
"그렇다고 겨우 그걸 남겨? 홀랑 먹으면 되지"
"한 숟가락도 더 안 들어가"



엄마는 겨우 한 숟가락 정도 되는 밥을 남겨놓고 수저를 놓았다. 아무리 배가 불러도 입에서 당기면 배가 미어지든지 말든지 먹고 보던 언니와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양이 많은 것도 아니고 눈곱만큼 되는 밥을 남기는 엄마를 우리 자매는 도통 알 수가 없었다. 홀라당 긁어먹고 깨끗이 그릇을 비우면 될 것을 엄마는 도저히 안 들어간다며 기어이 밥을 남겼다.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표도 안 날 그런 양인데 왜 그걸 남기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 leecine, 출처 Pixabay





얼마나 세월이 흘렀을까? 엄마가 남겨둔 밥 한술을 이해하지 못한 20대였던 나는 40대 후반이 되었다. 어느 날 밥을 먹는데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더 이상 한 숟가락도 들어가지 않았다. 탈이 났나? 하는 정도로만 생각하고 숟가락을 놓았는데 배탈이 난 건 아니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니 나아졌다.

그 후로도 매번 같은 일이 벌어졌다. 어느 정도 먹고 나면 더 이상 음식이 들어가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더 먹을라치면 배가 아파서 먹을 수가 없었다.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똑같이 밥 한 숟가락을 그릇에 붙여놓고 수저를 놓고 있었다. 마저 먹고 그릇을 깨끗이 비우려고 해도 내 생각 따위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조금이라도 더 먹었다가는 아픈 배를 한동안 움켜쥐고 있어야 했다.

지인들은 과식할 일이 없으니 저절로 몸매 유지가 되어 좋겠다고 했지만, 그것이 그저 좋게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내 몸이 이젠 더 이상 내 의지와 상관없이 무엇으로부터 통제당하는 느낌이었다. 그제야 더 이상 안 들어간다며 굳이 밥 한 술을 남긴 엄마를 알 것 같았다. 엄마도 나처럼 밥 한 숟가락이 아팠던 것이다.





© CoolPubilcDomains, 출처 OGQ




"배가 등 가죽에 붙어서 엎어져 죽을 것 같네"
"??????"
"왜 이렇게 밥을 먹어도 허기가 지지?"
"??????"


배가 등 가죽에 붙어 본 적 없는 나는 엄마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밥을 먹으면 금방 속이 든든해졌으니 밥을 먹어도 배가 고프다는 말장난 같은 엄마의 허기를 알지 못했다. 언니와 나는 맨날 다이어트한다고 난리였으니, 배가 등에 붙는 것이 로망이었고 엄마의 얘기는 그저 흉내 내지 못하는 꽃노래쯤 여겼을 것이다.

꼽아보니 엄마도 지금 내 나이 정도였다. 내가 지금 허구한 날 배고픔을 느끼듯 엄마도 그때 나처럼 허구한 날 배가 고프셨던 것이다.




© jeonsango, 출처 Pixabay




갑자기 들이닥친 한파가 물러가고 사방에 봄기운이 퍼졌지만 내겐 언제나 잔인한 봄이다. 해마다 오는 봄이 두렵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3월에 들어서기 무섭게 극심한 피로에 시달렸다. 배는 고픈데 입맛은 잃어서 하루 종일 굶으면서도 무엇을 먹어야 할지 모르겠고, 먹고 싶은 것도 없다. 겨우 몇 숟가락 먹으면 배가 불러 수저를 놓게 되고 또 언제 먹었냐는 듯 금세 허기가 졌다.

어떤 날은 아이스크림으로 끼니를 때웠다. 그렇게라도 당을 섭취해야 했다. 고기를 먹으면 힘이 좀 날까 해서 먹어봤지만 신통치 않았다. 대여섯 점 정도 먹으면 정량을 다 채우니 고깃빨로 정신 차리기도 글렀다. 주말에는 아예 방바닥에 몸이 들러붙어 일으킬 수 없었다. 금방이라도 기운을 차릴 수 있다면 어디 가서 뽕(?)이라도 맞고 싶은 심정이었다. 엎어져 죽을 것 같았다.

며칠을 고민하다가 하는 수 없이 녹용을 넣은 한약을 시켰다. 오자마자 미친 듯이 먹었다. 혹시라도 빨리 정신이 들까 하루 두 봉지도 털어 넣었다. 거슬리지 않는 맛인데 사레들린 것처럼 목구멍에 걸린다. 목젖이 자꾸 그것을 밀어낸다.





© HeungSoon, 출처 Pixabay





엄마의 봄도 나처럼 해마다 힘들었을 텐데 팔팔했던 딸년은 미처 그것을 알지 못했다. 혈기왕성한 남편과 아들이 엎어져 죽을 것 같은 나의 이 대책 없는 피로와 허기를 죽었다 깨어나도 모르듯이, 모른 척하려고 한 것이 아니었는데 나도 몰라서 몰랐다.

약봉지를 털어 넣을 때마다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이 치민다. 그 숱한 봄을 나 몰라라 해놓고, 엄마가 머물렀던 그 봄, 그 자리에 내 몸뚱이가 허물어지고 보니 이제야 미련스레 엄마의 봄이 생각난다. 지친 봄, 등에 붙은 그 배의 허기를 알 것 같다.

내 어미의 봄을 내팽개친 값을 치르느라 해마다 돌아오는 봄이 되면 나는 그렇게 지치고 무너지는가 보다. 얼마나 더 문드러지고 바스러져야 무심하게 지나쳤던 엄마의 그 봄이 미움을 거두어 갈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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