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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해밀 Jun 16. 2021

늙은 엄마는 새댁처럼 돌아갔다




큰언니가 살뜰히 보살핀 덕에 엄마는 1년 동안 큰 탈 없이 지냈다. 오랫동안 누워 있은 탓에 몸은 더 야위고, 굳어갔지만 그런 엄마를 언니는 마치 어린아이 다루듯 씻기고, 닦이며 온갖 정성을 다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가래가 조금 생기기 시작하더니 밤이 되면 더욱 심해 엄마는 숨 쉬는 것조차 힘들어했다. 스스로 가래를 뱉지도 못하고 막힌 가래 때문에 금방이라도 돌아가실 것 같았다. 


갑자기 닥친 일이라 언니 혼자 감당이 안 되어 가래라도 뺄 요량으로 집 가까이 있는 요양병원으로 모셨다. 다행히 가래를 어느 정도 빼고, 영양제를 맞으니 조금 차도가 있었다.



"엄마?"
"응?"
"엄마?"
"응?"



침대 옆에 쪼그리고 앉아 몇 번이고 엄마를 불렀다. 엄마는 예전처럼 길게 얘기할 수 없었다. 그래도 좋았다. 나와 눈을 맞추고, "엄마" 소리에 평소처럼 답을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랬던 엄마는 병원에 입원한 지 2주가 지나자 점점 상태가 나빠졌다. 퇴근 후에 병원을 찾았을 때 엄마는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해 코에 호스를 끼고 있었다. 겨우 "응?" 하던 대답도 더 이상 들을 수 없었다. 



"엄마? 내 말 들려?"
".........."
"들리면 눈 한 번 깜빡해 봐"



그제야 엄마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조차도 힘이 드는지 반응을 잘 보이지 않았다. 대답도, 눈을 깜빡이는 것도 이젠 더 이상 아무런 소통의 수단이 되지 못했다. 그저 엄마와 눈동자를 맞추는 것이 전부였다. 맞은 수액은 고스란히 피부 밑에 고여 손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투명한 물 풍선처럼 부풀어 있었다. 손조차 잡을 수도 없다.  





© polarmermaid, 출처 Unsplash





주중에 공휴일이 있어 엄마와 종일 함께 있을 수 있었다. 간호라 할 것도 없이 그저 옆에서 지켜보는 것이 전부였다. 점점 눈에서도 힘이 빠져 엄마의 눈을 맞추는 시간도 줄어들었다. 침대에 누워 있는 엄마의 얼굴을 위에서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천천히 눈동자를 움직이던 엄마는 나와 눈이 마주쳤다. 



"엄마!"
"엄마!"



작은 소리로 불러보았다. 여전히 답이 없다. 한동안 나를 빤히 바라보던 엄마의 눈에서 또르르 눈물이 흘렀다. 종잇장 같은 엄마는 무슨 힘으로 저 뜨거운 눈물을 밀어내고 있을까? 움직이지도 못하고, 말도 막힌 채 사력을 다해 몸 밖으로 내보내는 저 눈물의 의미는 무엇일까? 힘없이 늘어진 눈꺼풀에 갇힌 눈물은 그 안에서 파르르 떨며 일렁이고 있었다. 그것은 어쩌면 엄마의 파도였는지 모른다.

그 안에 녹아있는 소리 없는 언어가 무엇인지 알 것 같은데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엄마를 대신해 속시원히 이것이라 말하지 못하지만 전해오는 그 의미가 내 심장을 무겁게 짓눌렀다. 

이틀 뒤, 엄마는 더 이상 나와 눈을 맞추지도, 눈물을 흘리지도 않고 허공만 바라보다가 서럽도록 빛이 좋은 6월 어느 날, 그 허공으로 떠났다. 마지막 한 줄기 눈물은 끝내 채우지 못하는 고랑으로 내 가슴에 길게 남겨놓고, 엄마는 어느 녁에 두고 온 젖먹이가 있는 새댁처럼 맨발로 황급히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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