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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해밀 Nov 30. 2021

볶음밥의 반추




주말에 아들과 오랜만에 영화를 보러 갔다. 오는 길에 점심을 먹으러 집 근처 식당에 들러 철판 볶음밥을 시켰다. 점심시간을 훌쩍 넘긴 시각이라 출출하긴 했지만 속이 약간 불편해서 시장기만 면하면 되겠다 싶었는데 녀석도 그다지 배가 고프지 않다며 가벼운 메뉴를 시켰다.

볶음밥이 나올 동안 아들은 한쪽 코너에서 오이피클을 비롯한 반찬 몇 가지를 접시에 담아왔다. 해물과 야채를 넣은 볶은밥이 나왔다. 보기에는 그럴싸했는데 불편한 속 때문인지 그다지 먹히지 않았다. 무엇보다 겉이 마른밥이 자꾸 목구멍에 걸리는 것 같았다. 찬으로 가져온 피클과 단무지를 섞어가며 먹어보았지만 두 번 정도 떠먹고는 숟가락을 놓았다.

테이블에 있던 물로 입을 축이며 매장을 훑어보는데 다른 테이블에 있는 손님이 오목한 그릇에 무언가 담아 가는 게 보였다. 연이어 샐러드도 담아갔다. 우리 테이블에는 없는 거라 아들에게 물었다.





© itworkonline, 출처 Unsplash





"아들, 샐러드도 있나 보네?"
"네. 있어요. 양배추 썰어놓은 건데 밥에 샐러드는 좀 아닌 것 같아서요"
"다른 사람은 국물도 가져가는 것 같은데?"
"네. 가져올까요?"
"응, 조금만 가져올래?"


국물을 가지러 간 아들은 원하지도 않는 샐러드를 담고 있었다. 샐러드는 필요 없으니 가져오지 말라고 이름을 몇 번 불렀지만 안 들렸는지 금세 샐러드 한 접시, 국과 물김치를 담아왔다. 까슬거리는 볶음밥이 불편하던 차에 가져온 국물을 마셨다. 따뜻한 국이 들어가니 뻑뻑한 목이 조금 나아지는 것 같았다. 물김치도 한 숟가락 떠먹었는데 생각보다 맛이 괜찮았다. 처음부터 가져왔으면 그나마 좀 더 편하게 밥을 먹을 수 있었을 텐데.....

평소 아들은 국이나 찌개를 잘 먹지 않는다. 그래서 아마도 저한테 필요 없으니 나도 그럴 것이라 여겼는지 모른다. 나도 그다지 국물을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그 볶음밥은 하나같이 밥알이 꼿꼿이 고개를 쳐들고 있어서 국물 없이 먹는 것이 어지간히 불편했다. 내 목구멍이 메거나 말거나 아들은 그다지 배가 고프지 않다던 사람이 맞나 싶을 만큼 와구와구 밥을 먹었다.





© ryutarouozumi, 출처 Unsplash





"국 더 가져다 드릴까요?"
"아냐, 다 먹었어. 따뜻한 국물이 들어가니까 좋네"


가져온 국을 평소와 달리 차 마시듯 들이키는 것을 보고는 밥을 먹던 아들이 물었다. 뒤늦게 가져온 샐러드를 억지로 먹었다. 먹지도 않을 걸 가져와서 남기는 것 같아 미안해서였다. 위장에 좋다는 양배추니까 속이 불편해도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하며 아들이 가져온 접시를 비웠다.

나는 젊어봤는데, 녀석은 늙어보지 않아서 목이 메는 것이 어떤 건지 모를 것이다. 아들이 철판에 눌어붙은 밥까지 벅벅 긁어서 다 먹을 때까지 비비고, 볶이고 했는데도 형체가 흐트러지지 않고 온전하게 생겨먹은 밥알을 들여다보았다. 아들처럼 젊었던 때가 밥알처럼 되살아났다. 나보다 더 늙은 엄마의 메인 목이 그제야 오돌돌한 밥알처럼 떠올랐다.

무심한 아들의 얼굴에 못돼 먹은 울 엄마 딸년 얼굴이 자꾸 겹친다.......
그 딸년 목구멍에 오랫동안 엄마가 머물다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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