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의 무게

by 파란 해밀




"어머니, 생이가 저녁 내내 현관문만 쳐다보고 있어요"
"마음이 아프네요"



그동안 숱하게 여행을 다녀도 먼저 안부를 물어오지 않던 무심한 큰 녀석으로부터 교육 첫날 저녁에 문자가 왔다. 아들은 내가 혼자 몇 주 동안 남미를 갔을 때조차 나의 안부를 전혀 궁금해하지 않은 녀석이다. 괘씸하기도, 섭섭하기도 해서 남편과 아들이 모여 저녁을 먹는 어느 날 얘기를 했다.


"아니 어떻게 된 게 사람이 몇 주 동안 그 먼 남미를 혼자 갔는데도 잘 도착했느냐? 별일 없느냐? 하고 안부 묻는 사람이 없어?"
"당신 혼자 그동안 잘 다녔으니까 당연히 잘 있는 줄 아니까 그렇지"
"어머니는 혼자서도 잘하시는 줄 다 아니까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가족이 밖에 나가 있는데 그건 최소한의 관심 아냐?"



그렇게 폭탄 같은 잔소리를 퍼붓고서야 녀석은 그 후로 가뭄에 콩 나듯 드문드문 귀한(?) 안부 문자를 보내오곤 했다. 그러던 녀석이 교육차 집을 떠난 첫날부터 집에서 키우고 있는 고양이 안부를 득달같이 전해왔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 대신한다고 평소에는 고양이 발톱 깎아주는 게 전부인 녀석이 밥 주고, 똥 치우고, 놀아주어야 해서 오기 전부터 신신당부를 하고 왔는데, 낳아주고 길러준 어미보다 더 살뜰히 챙기고 난리다. 자식 키워봐야 소용없다더니 주워온 고양이한테도 밀리고 말았다.








"어떡해? 금요일 저녁에 내려간다고 전해줘. 며칠만 기다리라고"
"네. 그래 볼게요. 자꾸 여기저기 울면서 다녀요"


녀석의 마지막 문자가 오랫동안 진동을 한다. 고양이라면 질색팔색이었는데 어쩌다 팔자에도 없는 집사가 되어 집 떠나와서도 고양이 걱정을 하는 신세가 되었다. 늙어가면서 하나, 둘 내 주변을 정리하고 줄여가야 하는 판에 뭔가 더 얽매이고, 인연을 만들어 가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고양이가 들어오기 전이나, 고양이가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초반에 비해 집을 떠나는 것이 홀가분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예전에는 아무 부담 없이 떠날 수 있었는데 젖먹이 아이를 두고 가는 것처럼 제일 먼저 고양이가 마음에 걸렸다.

1주일간 베트남 여행을 마치고 집에 들어서던 날, 베란다에서 햇볕을 쬐고 있던 녀석이 내가 문을 열고 들어서는 것을 알아보고는 "야옹~~~~~~" 하며 쏜살같이 거실을 가로질러 달려와 안기던 그날부터였을 것이다. 1주일 동안의 기다림이 여실히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 후부터는 집을 떠나는 일 앞에 번번히 고양이가 제일 먼저 가로막고 있었다.








하필 주중에 아들도 출장이 있어 집을 비워야 했다. 근처에 사는 조카를 비상 호출하여 이틀 동안 케어를 부탁했다. 점심시간에 잠시 가서 화장실 청소를 하고, 퇴근해서는 같이 놀아주고, 실시간으로 녀석의 근황을 보고(?) 받았다. 영락없이 어린아이 혼자 집에 두고 나온 어미 심정이었다.

문득, 인연이나 소유의 무게가 전해졌다. 어렸을 적, 정 들여 키우던 개를 잃고 나서 다시는 그런 상실감을 반복하고 싶지 않아 반려동물을 키우려고 하지 않았다. 동물들도 사람과 똑같은 무게의 인연이라 언젠가는 겪어야 하는 이별의 아픔이 싫어서였다.

그런데도 뜻하지도 않게 제 발로 따라 들어온 새끼 길고양이를 엉겁결에 키우게 되면서 또다시 무거운 인연의 굴레를 두른 것 같다. 늙어가면서 제일 좋은 것 하나를 꼽으려면 마음이 가벼워진다는 것이고 그렇게 살려고 하는데, 정작 늘그막에 맞은 새로운 인연이 참 무겁게 느껴진다.






퇴근하면 온종일 내 궁둥이만 쫄쫄 따라다니는 고양이를 보며 언젠가 녀석이 먼저 가야 내 맘이 편할지, 내가 먼저 가야 좋을지를 저울질하고 있는 나를 보며 다시는 지독한 관계에 매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관계를 맺기는 쉬운 듯 하나 맺은 관계를 잘 유지하기도, 끝을 잘 내는 것도 이제는 많이 버겁다. 지금 내게 걸쳐진 인연과 관계만으로도 남은 시간 동안 잘 마무리해야 할 충분한 무게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