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입지 못하는 옷

by 파란 해밀




계절이 바뀔 때마다 그동안 입었던 옷 한 무더기씩을 세탁소에 맡겼다. 지나는 계절의 갈무리이기도 하지만 또다시 돌아올 계절을 위한 준비이기도 했다. 직장에서 하복을 입어야 하는 철이 되어 늘 하던 대로 옷 정리를 했다. 추위를 워낙 많이 타서 봄이 다 가도록 늦게까지 입고 있었던 동복을 여느 때처럼 아무 생각 없이 세탁소에 맡기려다 그만두었다. 6월 말에 퇴직을 하면 이제 더 이상 그 옷을 입을 일이 없기 때문이다.


한 번도 입지 않은 새 옷은 체격이 비슷한 후배에게 주고, 옷장 안에 걸려있던 긴팔 와이셔츠와 겨울 바지를 돌돌 말아 쓰레기봉투에 담았다. 캐비넷 구석에서 나온 계급장과 옷에 달던 부착물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36년의 기념으로 이 정도는 남겨둘까 하고 잠시 망설였지만 그것도 봉투에 함께 쓸어 담았다. 떠나온 길에 대한 그 어떤 미련도 갖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인지, 다른 건지 모르겠다.





photo-1489274495757-95c7c837b101.jpg © mroz, 출처 Unsplash





불어나는 옷으로 옷장에 걸어둔 채 미처 입지 못한 것은 있었지만, 계절이 돌아와도 다시는 입을 일이 없다는 명백한 사실 앞에 깡그리 옷을 정리해야 하는 처음으로 겪는 이 상황이 참으로 낯설다. 시간이 지나면서 빳빳했던 와이셔츠 깃과 소매 끝이 헤지고 색이 바래 몇 벌을 버리면서도 그저 세월에 스친 자국 정도로만 여겼는데, 아직도 여전히 빳빳하고 힘이 가시지 않은 셔츠를 버리려고 접으면서 자꾸 삐죽거리는 내 마음도 꾹꾹 눌러 접었다.

돌아온 계절에 옷장에 걸어두었던 옷을 다시 꺼내 입을 수 있었던 것이 결코 하찮은 것이 아니란 것을 이제야 알았다. 이유가 무엇이든 다음 계절을 약속하지 못하고 다시는 입을 일이 없는 옷을 정리하는 사람의 손끝에 머무는 소리 없는 외침이 자꾸 내 귓전을 때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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