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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해밀 Jul 14. 2022

강아지풀의 기억





주섬주섬 수영용품을 챙겨 오후 6시쯤 집을 나섰다. 퇴직 후에 수영장을 예전에 다니던 곳으로 바꾸었다. 집에서 가자면 둘 다 거리가 비슷하지만 그동안 직장에서 가까운 곳을 다녔는데 교통이 복잡한 시내에 있어서 도로가 한산한 이곳으로 옮겼다. 수영을 하러 오갈 때마다 음악을 들으며 한적한 도로를 달리는 기분은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어 그것이 수영장을 바꾼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연일 이어지던 무더위가 어제 하루는 조금 얌전하더니 차창으로 들어오는 바닷바람이 황송할 만큼 시원하다. 이른 시간인데도 벌써 주차장에는 차들이 꽤 들어차 있다. 사람들이 드나드는 통행로 바로 옆에 자리가 있어 주차를 했다. 차 문을 열고 내리려고 하는데 화단에서 아무렇게 자란 강아지풀이 차창까지 고개를 높이 치켜세우고 있다.









그동안 10일 가까이 드나들면서도 보지 못했는데 옆에 주차를 하고 나서야 겨우 눈에 들어왔다. 일부러 키우려고 한 것도 아니고, 예쁘게 단장한 것도 아니지만 오랜만에 본 강아지풀은 한동안 나를 차에서 내리지 못하게 했다. 그것이 나를 갑자기 여덟 살로 데려다 놓았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 집 앞에는 넓은 풀밭이 있었다. 공공 관리 시설 같은 것이었는데 시설물은 별로 없고 잘 다듬어진 풀밭으로 된 축구장 같은 곳이라 동네 아이들이나 어른들도 나와 노는 놀이터 같은 곳이었다. 그곳에서 언니를 따라 쑥을 캐기도 하고, 지천으로 핀 토끼풀로 시계와 반지를 만들어 나누어 끼기도 했다. 하루는  여느 날처럼 뛰어놀다 미끄러졌는데 하필 거기에 벌이 있었는지 발가락을 쏘여 코끼리 발이 되어 며칠 동안 고생한 것은 두고두고 그곳을 잊지 못하게 하는 추억이 되었다.









오빠, 언니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놀다가 지치면 대자로 풀밭에 널브러졌다. 그때마다 어김없이 강아지풀을 뜯어서 코 끝을 간지럽히기도 하고, 누가 오래 참나 내기를 하기도 했다. 아무리 참으려 해도 오빠의 스킬이 능해서인지, 강아지풀의 원천적 기술 때문인지 번번이 얼마 버티지를 못했다.


'지금은 많이 참을 수 있을 것도 같은데.......'

강아지풀이 어찌 한해살이풀일까? 50년도 더 된 기억이 여전히 생생한 솜털이 되어 나를 간지럽히는데...... 오래된 예쁜 기억이 마치 남의 것처럼 아득하게 여겨질만큼 늙어버린 현실이 야속하다.









조금 떨어진 곳에 참새 한 마리가 늦은 저녁을 찾고 있다가 누군가 걸어오는 발자국 소리에 놀라 호다닥 날아간다. 여덟 살 어린 소녀도 그를 따라간다. 새가 날아간 빈자리에 수영 바구니를 든 백수가 지나간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풀밭 위의 여덟 살 여자아이를 강아지풀 더미 사이에 떨구며 터벅터벅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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