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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해밀 Jul 28. 2022

하늘만 보고 가도 남는 장사



달랏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명소로 랑비앙산을 가보기로 했다. 오토바이로 제법 가는 곳이었다. 평일인데도 이미 많은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코시국이 아니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 정상까지 운행하는 지프차를 타야 했다. 정상에 갔던 차가 내려오면 티켓팅 한 순서대로 이름을 호명하고 그제야 차를 탈 수 있다. 온라인 예매도 안 되는 매우 고전적(?)인 방식이다.







티켓팅 창구 여직원은 20분 정도 기다리면 될 거라는데 호명하는 창구에 가보니 내 이름표는 까마득한 뒷줄에 놓여있다. 10분 정도 기다리다 마이크를 들고 호명하는 남자 직원에게 내 순서까지 얼마나 걸리겠느냐고 물어보았다.


30분 정도 걸리겠다는 말을 듣고 잠시 고민을 했다. 막상 하다 보면 30분 이상 걸릴 텐데 기다렸다가 지프차를 타고 올라 갈지, 바로 앞에 보이는 언덕에 오르는 걸로 대체할지 망설이다가 티켓을 취소하고 가까운 언덕으로 올라가 보았다.







높은 정상에 올라보면 더 멋진 풍경을 즐길 수 있겠지만, 혼자 60만 동을 주고 많은 시간을 기다리지 않고도 작은 언덕에서 올려다본 파란 하늘은 공짜로 그만큼의 값을 톡톡히 해주었다.


하늘이 하늘색이었다. 크레파스에 적혀있는 하늘색으로 칠을 하면 딱 저 색이지 않을까?

페루 친체로, 쿠스코의 하늘만큼이나 달랏의 하늘도 눈이 시리도록 파랬다.







작은 언덕을 삥 둘러 걷다가 내려왔다. 정상에는 말을 타라며 새까맣게 그을린 아낙이 다가와 호객행위를 한다.


아주 오래전, 제주 우도에서 천지도 모르고 신바람 나게 말을 타고 내렸는데 연이어 손님을 태우고 돌아온 말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허겁지겁 물을 먹는 모습을 본 후로는 마음이 편하지 않아 동물을 타지 않는다. 그나마 코시국이 이들도 조금 쉬는 비수기라서 어쩌면 수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문을 빠져나와 무작정 왔던 길을 걸었다. 바삐 가는 동네 개와 눈도 마주치고, 색색깔의 장미 다발을 트럭으로 내다 파는 다부진 여사장의 활기도 진하게 느끼고, 동네 꼬마가 건네는 헬로 인사와 함께 건네는 예쁜 미소에 들뜨기도 했다.







메뉴판도 없는 동네 구멍가게 카페에서 아무 음료나 시켰더니 너무 달아서 한 모금만 겨우 입을 대고 나왔는데 젊은 여자 주인장이 오해하지 않기를 바랬다. 단 걸 워낙 싫어하는 내 입맛 때문이란 걸 그녀가 알면 덜 민망해해도 될 텐데...  돈을 받던 그녀의 어색한 미소가 지금도 또렷하다.







얼마나 걸었을까? 다시 그랩으로 오토바이를 부르려는데 작동을 안 한다. 고지대라서 그런가 싶어 더 걸어가서 해보아도 마찬가지다. 하는 수 없이 규모가 있는 마트 앞의 경비 아저씨에게 물어보았더니 마트 안의 젊은 직원을 불러다 준다.


사정 얘기를 했더니 이곳은 그랩이 안 되는 곳이라고 한다. 다른 방도를 물으니 옆 가게 아저씨가 40분 후에 일을 마치니까 그때 태워다 줄 수 있다고 한다. 너무 많이 기다리는 것 같아 차를 부를 수도 없냐고 하니 택시를 불러 주겠다고 한다.







젊은 청년은 일을 하다 말고 나와서 한동안 내 일을 봐주었다. 여행 왔냐고 물으며 금세 온 택시 기사에게 나의 행선지를 알려주며 꼼꼼하게 당부하는 것 같았다.


잘 가라고 웃으며 손을 흔드는 청년의 미소는 그가 입고 있던 초록색 티셔츠보다 더 싱그러웠다. 달랏의 푸른 하늘에 향긋한 고수를 고명으로 올린 사람에 취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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