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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해밀 Jul 30. 2022

소녀에 반하기도



링엄사 맞은편에 작은 가게가 있다. 마당이 넓은 가정집 한쪽에 음료와 과자를, 문 앞에는 과일을 팔고 있었다. 그랩 기사도 그 집 안에 오토바이를 세워 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링엄사를 둘러보고 나오니 망고가 눈에 띄었다.

아침을 거르고 와서 출출하던 차에 1킬로를 주문했다. 젊은 남자 주인이 망고를 씻고, 할머니가 껍질을 깎는데 집 안에서 웬 여자 아이가 나와 잰걸음으로 할머니 시중을 든다.





조금 떨어진 자리에 앉아 여자 아이가 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할머니가 망고를 다 깎자 비닐봉지와 일회용 장갑을 가져와서는 깎아 놓은 망고를 담아 내 테이블로 가져다주었다.


바쁠 때는 그 고사리 손도 유용하게 잘 써먹는지 일련의 흐름이 늘 하는 일처럼 익숙해 보였다. 멀리서 봐도 예쁜데 쪼르르 달려와 헬로~~~ 하며 건네주고 가는 모습이 잘 익은 망고처럼 달달해 보인다.





그랩 기사에게 나눠주려고 봉지 하나를 갖다 달라했더니 아이는 찰떡 같이 알아듣고 가져다준다. 집어먹을 젓가락이 없어 다시 불러 일회용 장갑 하나를 부탁하니 연신 생글거리며 잽싸게 갖고 온다. 그 모습이 예뻐서 의자를 빼주며 앉아서 같이 망고를 먹자고 권했다.


처음에는 약간 쭈뼛하더니 재차 권하자 땡큐~~ 하며 앉아서 함께 망고를 먹기 시작했다. 영어를 모르는 줄 알고 나는 지레 영어로 말하지 않았는데, 먼저 헬로~~~, 땡큐~~~ 하며 선제공격을 날리는 소녀의 도발(?)이 아찔하다.





그때부터 여자 아이와 세대와 국경을 초월한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예닐곱 살 정도일 줄 알았는데 열 살이라며 똑 부러지게 알려준다. 너무 어려 보여 그 나이가 맞나 싶어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으니 내가 말을 못 알아들은 줄 알고 그 순간의 분위기를 알아채고는 손가락까지 펴 보이며 열성적으로 알려준다.


과일을 팔고 있는 사람은 아빠, 망고를 깎아준 사람은 할머니, 엄마는 집 안에 있다. 지금은 방학이고 베트남에서는 3개월 동안 여름 방학을 한다. 학교는 집에서 멀지 않아 걸어서 다닌다. 영어는 학교에서 인터넷으로 공부하고 있다며 소소한 일상을 서툰 영어지만 열심히 설명해 주었다.





이야기가 길어지자 집 안에 있던 아이 엄마까지 나와 합석을 했다. 둘째를 임신한 엄마가 첫째 딸을 바라보는 눈에는 사랑스러움과 대견함이 가득 배어 있었다.


베트남에 온 느낌이 어떻냐는 소녀의 야무진 질문에 파란 하늘만 봐도 너무 좋다고 했다. 사시사철 파란 하늘만 보고 사는 아이는 내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 영어 단어처럼 들어도 도무지 이해하지 못 할 것이다.


해맑은 아이의 눈에 오래오래 파란 하늘이 담겨 있길 바라며 자리를 일어나야 했다. 그랩 기사만 아니면 오후 내내 퍼질러 앉아 노닥거렸을 텐데 아쉬움을 껌딱지처럼 붙여놓고, 소녀와의 짧은 시간이 다 녹지 않은 설탕 알갱이처럼 베트남의 달콤한 기억으로 남겨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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