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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해밀 Aug 05. 2022

누구의 바다?




달랏에서 출국 하루를 남겨 놓고 다시 나트랑으로 향했다. VEXERE 홈페이지의 화려한 사진발에 현혹되어 왕복으로 리무진을 예약했는데 차량 내부는 담배와 땀 냄새가 범벅이 되어 코도 들이대지 못할 정도였다. 3시간 반을 최대한 수월하게 가기 위해 잠을 청했지만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아 도착할 때까지 냄새와 씨름을 해야 했다.

수시로 남은 시간을 들여다보며 다시 돌아온 나트랑은 떠날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뜨거웠다. 선선하다 싶은 곳은 습기가 있고, 습하지 않아 좋다 싶은 곳은 햇빛이 뜨겁다. 어쩔 수 없는 공평함으로 받아들이며 달랏에서 가져온 꿉꿉한 옷들을 꺼내 쨍쨍한 햇빛에 널었다.









나트랑에서 두 번째 숙소는 바닷가 쪽에 잡았는데 새벽녘 커튼 사이로 들어온 빛에 일찌감치 잠이 깼다. 7시 정도 되었으려나 했는데 겨우 5시 반이다. 그런데도 대낮처럼 밝은 빛이 잔뜩 들어와 더 이상 잠이 올 것 같지 않아 일어나서 창밖을 내다보았다.


눈앞에 보이는 바다에 까만 점들이 둥둥 떠 있는 게 보였다. 한두 개가 아니다. 낮에는 아무것도 없는 바다였는데 양식을 위한 특별한 부표일 리도 없고 궁금했다. 다시 침대로 돌아가 빈둥거리기엔 잠이 다 달아나서 호텔을 나섰다.









바다로 향하는 사람은 나뿐이 아니었다. 많은 베트남 사람들이 우르르 바닷가 쪽으로 가고 있었다. 손에는 작은 물안경 하나 달랑 들고 웃통을 벗은 어른이나 아이, 남자, 여자 가리지 않고 바다로 향하고 있었다. 바닷가에 도착하니 막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었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 빛을 받으며 바다에서 수영을 하고 있었다. 숙소에서 보았던 까만 점들은 수영하는 사람들이 물 밖으로 내민 머리였던 것이다.

5시 반에 이미 수영을 마치고 가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아마도 그들은 훨씬 더 이른 시간에 와서 수영을 했을 것이다. 단 한 번도 상상조차 해보지 않은 풍경이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어쩌다 몇 사람 정도 보이던 낮의 바다와 너무도 다른 새벽 바다는 여행객들의 화려한 휴양을 위한 무대가 아니라, 그곳에 사는 베트남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을 위한 푸른 터였다.









조깅이나 워킹을 위해 학교 운동장이나 공원을 찾는 것이 한국 아침의 보편적인 일상이라면, 나트랑에서는 해도 뜨지 않은 바다에서 하는 수영이 그들의 하루를 시작하는 알람 같은 것이었다. 멀리 있는 사람들은 오토바이나 자전거를 타고 와서 수영을 하고 젖은 옷 그대로 돌아가기도 했다. 바닷가 곳곳에는 짠 물에 젖은 몸을 씻을 수 있는 수도 시설이 군데군데 있고, 곳곳에서 수영복을 갈아입고 몸을 닦는 모습은 지극히 자연스러워 보였다.

코로나와 더운 날씨로 을씨년스러울 정도로 휑했던 한낮의 바다와는 너무 상반된 모습이라서 보고 있으면서도 다른 곳인가 할 정도로 한동안 정신이 들지 않았다.









네모 반듯하고, 레인이 선명하게 잘 쳐진 전형적인 실내 수영장만 당연히 생각하고 있었다. 어쩌다 바다 수영을 하는 사람도 그들만의 특별한 활동이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보니,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나와 가볍게 산책하듯 바다 수영을 하는 풍경이 내게는 무척 경이롭게까지 느껴졌다.

더구나 이름난 해양 관광 도시의 바다가 멀리서 찾아 온 외국 관광객들의 것이 아니라 현지인들의 일상에 대놓고 관여(?) 하고 있다는 것이, 마치 내가 저들에게 내 몫의 바다를 빼앗긴 것 같은 착각이 들어 그 순간 는 소외감에 어이가 없어 싱겁게 웃고 말았다.










한동안 바닷가에 앉아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지켜보았다. 뜨거운 햇빛을 피해 어쩌면 이 시간이 이들에게는 운동하기 가장 좋은 시간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달랏에서도 유명 관광지는 아침 7시부터 영업을 하고 있었다. 아침 7시면 한국에서는 이제 대부분 일어날 시간일 텐데, 7시에 영업을 시작하는 것이 선뜻 이해되지 않았는데 아침의 이 풍경을 보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러고 보니 다들 저마다 조건이나 특색에 맞게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고,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절실히 느꼈다. 나의 관점으로는 이색적이고 이질적이라서 때로는 이상하게까지 여겨질 수도 있는 것이 그들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고, 그저 삶의 방식이 다른 차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때쯤 바다 위로 얼굴을 내민 아침 해가 어느새 쑥 올라와 있다.


'그래, 그 차이만 알고 가도 너는 이 여행 값을 잘 챙긴 거야......'

라고 말하는 것 같다. 내 시선에서만 바라보고 판단한다면 살아가는 동안 언제, 어디에서든 내 머리를 어지럽게 흔드는 차이가 있을거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며 나트랑의 바다를 그들에게 조용히 등 뒤로 내어 주고 숙소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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