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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해밀 Apr 06. 2023

예행연습





월요일 아침부터 화장실을 뻔질나게 들락거리고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오후가 되니 속이 더 뒤집힐 것 같아 좀처럼 빼먹지 않는 그림 수업도 건너뛰었다. 저녁에 아들이 운동을 가지 않고 곧바로 퇴근을 했다. 아들도 속이 좋지 않아 운동을 가지 않고 바로 왔다는 것이다. 둘이 겪고 있는 증상이 비슷했다.

"혹시 코로나인가?"
"아무래도 장염인 것 같아요. 전에 장염 걸렸을 때랑 비슷한데요"


둘 다 소화제 한 봉지를 털어 넣고 울렁거리는 빈속을 안고 끙끙거렸다. 저녁이 되자 감기 몸살처럼 오한과 열이 함께 찾아와 밤새 끙끙 앓았다.









다음 날 아침, 아들이 출근 준비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 일어나지는 못하고 자리에 누워 전화를 걸어 물어보았다. 저도 몸이 좋지 않아 오전에 병원을 가봐야 될 것 같아 반차를 냈다고 한다. 9시쯤에 둘이서 집을 나섰다. 하루를 꼬박 굶고 온종일 드러누워 있어서 그런 지 10분 남짓 걸리는 병원까지 걸어가는 것도 힘이 들었다. 더욱이 발을 디딜 때마다 속이 울렁거려서 빨리 걸을 수도 없었다.

가까스로 병원 입구에 도착했다. 의사 선생님이 너무 과할 정도로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이 부담스럽지만 가끔 탈이 나면 찾던 병원이었다. 2층에 병원이 있어 천천히 계단을 올랐다. 먹은 게 없어서인지 한 계단, 한 계단 오를 때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속이 함께 울렁거려 계단 오르는 것이 쉽지 않았다.









밑에서 따라오던 무심한 아들 녀석한테도 내가 많이 힘들어 보였는지 슬며시 등을 받쳐주었다. 별것 아닌 것 같은데 그렇게라도 받쳐주니 오르기가 조금 수월해졌다. 한 걸음, 두 걸음 힘겹게 발을 떼어 옮기는데 그다지 멀지 않은 미래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등골이 자꾸 시렸다.

길을 가다 보면 연세 드신 분들의 걸음이 느리고 둔해서 보행자들의 진행을 막거나 그들을 피해 둘러 가야 할 때가 더러 있다. 그럴 때마다 연로한 나이 때문이라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가슴으로는 제대로 공감하지 못했다. 이유는 다르지만 막상 내가 힘겹게 계단을 올라보니 뒤에서 들리는 발자국 소리에 얼마나 조바심을 냈을까 싶다.









오로지 한 번뿐인 도도한 인생에서 미리 연습하고,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훨씬 더 겸손한 삶을 살 수 있을 텐데......  천 년, 만 년 지금 이 청춘으로 살 것 같이 까불다가, 어느새 대수롭지 않게 보내버린 수북이 쌓인 시간의 빈 껍데기를 보고서야 후회를 한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많은 것들이 나를 비껴가고 난 후 일 것이다. 병원 계단을 힘겹게 올라보니 누군가 어렵게 내디딘 늙은 발자국 한 번, 그 발걸음의 무게를 알 것 같다. 삶이 기우는 그 처절함을 설풋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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