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족자카르타 외곽으로 나가보기로 했다. 딱히 계획에 있었던 것은 아닌데 숙소에 있는 팸플릿에 나와 있는 설명을 보고 관심이 가는 두 곳이 있었다.
그랩으로 운전기사를 포함해서 자동차를 4시간 동안 280,000루피아에 렌트를 했다. 4시간이면 두 곳을 충분히 다녀올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곳은 Pulesari Tourist Village이고, 한 곳은 Breksi Cliff Park이다. Pulesari Tourist Village는 인도네시아의 전통과 문화를 접할 수 있는 마을로 소개하고 있어서 많이 기대가 되는 곳이다.
1시간가량 꼬불꼬불 산길을 달렸다. 가도 가도 목적지는 나오지도 않고 그랩 기사는 엄청나게 조심 운전을 하는 바람에 속으로 답답해서 애만 태웠다.
한참을 더 가니 드디어 구글맵의 빨간 목적지가 가까워지는 것이 보였다. 기사가 차를 세우고 목적지라고 하는 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휑한 운동장을 끼고 있는 건물에는 단체로 온 학생들이 야외 활동을 하고 있을 뿐 그게 전부였다.
설마 다른 무언가가 있겠지 하고 나가보았더니 그냥 사람 사는 동네일 뿐이다. 베트남 사파의 소수 민족들이 사는 그런 부락으로 생각했었는데 그저 산동네에 있는 작은 마을일 뿐이었다.
황당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해서 동네를 조금 걸어 올라가 보았다. 지나가는 꼬마가 나를 외계인 보듯 자꾸 쳐다본다.
몇 걸음 더 올라가니 영락없는 시골 구멍가게가 나온다. 동네 할머니 세 분이 앉아 있어서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네자 그들도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준다.
그중의 한 분이 내게 "잘란잘란" 하며 위쪽 길을 가리킨다. 잘란은 인도네시아어로 길이라는 뜻인데 잘란잘란은 산책하다는 의미이다.
할머니는 동네를 한 번 둘러보라고 하지만 둘러보고 말고 할 동네가 아니었다. 더욱이 3시간 밖에 남아 있지 않은 렌트 시간 때문에 빠른 선택과 결정을 해야 했다.
이곳은 코로나 이후 아직 제대로 활성화가 안 된 건지, 썰렁한 이곳이 왜 Tourist Village로 소개되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하는 수 없이 이곳은 얼른 마음에서 지우고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기로 했다. 가는 중에 차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땅과 하늘이 어우러진 종합 선물세트 같다.
산골동네에서 40분가량을 달려 나와 Breksi Cliff Park에 도착했다. 이미 입구에서부터 대형 관광버스들이 오르내리는 것을 보니 아까처럼 허탕은 아닌 게 분명하다.
주차장에서 내려오면 Cliff Park라는 이름에 걸맞게 커다란 절벽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목 좋은 곳은 어느새 사람들이 포토존으로 차지하고 있다.
이번에는 제대로 잘 찾아온 것 같아 절벽을 끼고 돌아보기로 했다.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자연절경과 함께 절벽에 새겨진 정교한 조각을 보기 위해서였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 보니 커다란 절벽을 중앙에 놓고 주변을 인공적으로 조성해 놓은 공원 같다. 중간중간 사진 찍기용으로 포토존을 꾸며 놓아 젊은 사람들에게는 인기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기대했던 이미지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위로 올라가 멀리 보이는 툭 트인 족자를 보는 것으로 위안을 삼아야 했다.
살면서 어찌 매번 다 만족하는 결과만 얻을 수 있을까? 오늘 나는 예상했던 기대치에 분명히 미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인도네시아 전통적인 생활을 꼭 접해 보고 싶었고, 제멋대로 생긴 기암괴석의 웅장함을 볼 줄 알았다.
그것이 목적이라면 오늘 나는 밑지는 여행자다.
그러나 빠진 앞니가 훤히 다 보이도록 웃으며, 내가 아는 몇 개 안 되는 단어 중에 잘란잘란으로 길을 열어준 할머니의 마음이 아쉬움이 남았던 자리를 어느새 꼭꼭 메꾸어 놓았다.
때로는 뜻하지 않은 행운이 따르기도 하고, 때로는 어긋나기도 하지만 셈으로 계산되는 마이너스는 아닌 것 같다.
단지 다른 색이 입혀지고, 다른 것이 들어왔을 뿐이다. 의도한 것과 의도하지 않은 것이 반드시 높은 만족도와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얼굴에 주름이 깊게 파이도록 웃어 주던 세 할머니의 미소와 드넓은 족자를 가득 담아왔다. 창 밖으로 아무렇게 나뒹구는 거리의 풍경을 떨어진 도토리 줍듯 주머니에 꽉꽉 넣어왔다. 갈비뼈 어디쯤이 괜히 실룩거리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