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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서 오토바이로 약 20분을 달려 아판디 미술관에 도착했다. 족자카르타에 와서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 그의 과감한 붓 터치에 끌려서 꼭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9시 땡 하자마자 나섰더니 너무 이른 시간인지 관람객이 나 밖에 없다. 입장료는 100,000루피아인데 거친 황마로 짠 파우치도 기념품으로 주는데 거의 수세미급이다.
첫 번째 전시관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안에 있던 직원은 그제야 전시관의 조명과 에어컨을 켠다. 나를 위해 돌아가는 에어컨 소리가 괜히 미안해진다.
전시관에는 그의 연도별 작품이 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많은 변화가 있다. 젊은 시절에는 색채와 터치가 부드러운 반면, 시간이 지날수록 색이 선명해질 뿐 아니라 터치도 굵고 강렬해진다.
그러다 후반으로 갈수록 형태는 점점 사라지고 색과 물감의 두께로 표현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고흐라는 닉네임에 고개가 끄덕여질 만큼 머뭇거리지 않는 강한 터치의 힘이 보는 사람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전시장 한쪽에는 아판디가 즐겨 탔다는 미쯔비시 자동차가 있다. 30년이 지났는데도 방금 물감을 칠한 것처럼 색이 곱다. 옆에 걸린 그의 푸른 풀밭과 세트처럼 잘 어울린다.
1전시관을 다 둘러보고 나오려는데 관람객이 없어서인지, 내가 외국인이라 그런지 안에 있던 직원이 따라 나와 바로 옆에 있는 2전시관으로 안내를 해준다.
곧장 들어가려는데 직원이 뭐라고 말을 하는 것 같은데 잘 못 알아듣고 쳐다보니 "Grave"라는 단어만 귀에 들어온다. 알고 보니 2전시관 바로 옆에 아판디 부부의 실제 묘가 있다. 그는 죽어서도 그의 작품과 함께 하고 있었다.
2전시관에는 1전시관에 비해 펜화가 많이 있다. 어반스케치를 배우고 있어서 그런지 나는 그의 펜화에 더 관심이 갔다.
힘의 강약으로 적절한 변화를 구사한 펜화를 오랫동안 코를 박고 쳐다보았다. 예전에 마티스의 연필 스케치를 보고 울컥한 적이 있었는데, 단순한 선 하나에도 사람이 그렇게 감동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참 믿기지 않는 일이다.
유품으로 걸려있는 그의 옷을 보며 도대체 그림을 어떻게 그리길래 옷이 저렇게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것은 관람을 모두 마치고 틀어주는 그의 비디오 영상을 보고 나서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2전시관까지 들어와서 기다리던 직원은 3전시관까지 나를 데려다주었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데 좀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그게 그 사람이 하는 일이려니 했다. 전시관을 들어섰는데 앞의 그림과 좀 다른 그림과 난데없이 자수 작품이 걸려있다.
3전시관은 아판디의 가족들 그림과 자수작품이 전시되어 있다고 따라온 직윈이 일러주었다. 그 직원이 말해 주지 않았으면 당연히 아판디의 작품인 줄 알고 봤을 텐데 그가 따라온 것이 고마운 순간이었다.
첫 번째 부인, 두 번째 부인 그리고 아판디 딸의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남편과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화풍은 모두 비슷한데 아판디의 역동적인 힘이나 다양한 색감은 흉내도 내지 못한다.
딸은 그렇다 치더라도 두 아내 모두 그림을 그렸다는 것이 재미있다. 처음부터 그림을 그린 사람들인지, 아판디와 살다 보니 그림을 접하게 되었는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참 흔하지 않은 일이고 흔하지 않은 전시 구성이다.
3전시관까지 관람을 마치고 나와 카페에서 음료수 한 병을 받아 자리에 앉으니 함께 온 직원이 비디오를 틀어준다.
늘 보아 왔던 뻔한 설명 자료일 줄 알고 그다지 관심이 없었는데, 아판디가 살아 있을 때 찍은 영상들로만 구성되어 있어 눈이 번쩍 뜨였다.
***** 아래서부터는 아판디 가족의 그림
그는 그 옛날, 가난한 화가가 아니었는지 가족들과 세계 곳곳을 누비며 그림을 그렸다. 1900년대, 해외여행이 쉽지 않던 그때에 그는 프랑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을 다니며 많은 그림을 남겼다.
그 시대에는 당대에 인정받지 못하고 찢어지게 가난한 화가들이 대부분이었을 텐데 영상 속에서 아판디는 그렇게 보이지는 않았다. 물론 젊은 시절 그런 날을 다 인고하고 얻은 결과일 것이다.
아판디가 정원에서 자화상을 그리는 장면은 인상적이었으며, 그의 터치카 어떻게 나오는지 알 수 있었다.
2,300호는 되어 보이는 커다란 캔버스 앞에 앉아 옷이랄 것도 없는 걸치고 있던 티셔츠를 훌렁 벗어던진다. 캔버스 옆에 대형 거울을 놓고 스케치도 없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의 옆에는 수족처럼 부리는 사람이 있어 아판디가 원하는 물감을 재깍재깍 대령해 주었다. 아크릴 물감을 튜브째 들고 스케치를 시작했다.
물감을 짜서 선을 그리고, 짠 물감을 손바닥으로 문질러 면을 만들기도 하고 색을 부드럽게 하기도 했다. 영상을 보지 않았으면 알지 못했을 기법이다.
손가락과 손바닥이 붓이었다. 그러다 다른 색이 필요하면 손에 묻은 물감은 입고 있는 옷에다 쓱쓱 비벼 닦는다. 그제야 전시실에 걸려 있던 그의 옷이 왜 그 모양(?)인지 이해가 갔다.
커다란 캔버스에 그림이 완성되어 갈 즈음 간간이 영상에서 보이는 한 남자에게 눈이 갔다. 그는 아판디가 그림을 다 그릴 때까지 뒤에서 캔버스를 받치고 있었다.
화려한 명작에는 눈에 보이지 않고 알아주는 이 없는 누군가의 숨은 노고가 뒷받침되어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무던하게 두 팔을 들고 있는 그는 인간 이젤인 셈이다. 보고 있는 내 팔이 저려 오는 것 같다.
영상 종반의 아판디는 늙어서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자 앉아서 모델을 하고 있다. 아판디는 앉아 있고, 두 번째 부인은 그를 그리고, 딸은 아버지를 그리는 두 번째 아내를 그리고, 첫 번째 아내는 그 옆에서 수를 놓고 있다.
간간이 아판디는 두 번째 아내의 그림에 훈수를 놓고, 첫 번째 아내는 그런 남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미술관을 빠져나오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라는 것이 참 많은 것들을 숙성시키는구나.....
그림도,
사람도,
그리고 생각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