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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해밀 Jul 27. 2023

할까? 말까?



글을 써볼까" 하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딱히 마음에 둔 주제가 있던 게 아니라서 전에 썼던 인도네시아 여행 글을 읽어 보았다. 다녀온 지도 벌써 달포가 지났다. 호텔 방의 침침한 불 빛 아래서 작은 스마트 폰으로 글을 쓰느라 꽤 애를 먹었는데, 시간이 지나 다시 읽어보니 그때의 하루하루가 고스란히 되살아난다.

이것이 내가 글을 쓰는 이유다. 예전에 썼던 글을 한 줄, 두 줄 읽을 때마다 흙을 밀고 나오는 새 순처럼 기억이 파랗게 파랗게 올라온다. 돌아오고 나서도 나는 한동안 인도네시아 곳곳을 그림으로 남기며 그곳을 회상하곤 했다.







떠나기 전에는 이런저런 걱정들이 많았는데 무사히 마치고 돌아와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 다시 생각해 도 감사한 일이다. 세차게 잡아당겼던 고무줄이 튕겨 돌아온 것처럼 나는 본래의 자리에서 빠르게 적응했다. 익숙했던 것으로 되돌아오는 것은 아주 쉬웠다. 그 안에서 조금씩 변화를 주고 있지만 가끔 또다시 항공권을 뒤져보고 있다.

코로나 전에 비해 3배로 뛰어오른 멕시코행 비행기, 한 달을 머물기에 이탈리아는 6인용 도미토리마저도 동남아시아의 웬만한 호텔보다 더 비싸다. 백수의 얄팍한 지갑이 걸리고, 감당하기 버거운 배낭과 저질 체력에 선뜻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자꾸 항공권을 기웃거리는 것은 점점 나의 한계가 보이기 때문이다. 더 지나면 이젠 꿈도 꾸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마음이 조금씩 급해지는 것이 느껴진다. 멕시코에서 프리다 칼로의 그림을 보고, 알록달록한 이탈리아 친퀘테레의 산 동네를 걸으며 스케치를 해보고 싶은데 사시사철 물 먹은 솜처럼 축축 처지는 몸은 나를 자꾸 제 자리에 눌러 앉힌다.






내가 져야 할 책임과 의무로부터 다소 헐거워지고 나니 내 몸뚱이도 많이 헐거워졌다. 백수가 되는 날만 손꼽아 기다렸는데, 콤보로 움직이는 이 얄궂은 세트 구성이 참으로 원망스럽다. 때는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막연한 그때를 위해 많은 것을 양보하고 뒤로 미루며 살았다. 그때는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었다.

이제 고스란히 내 것으로 쓸 수 있는 시간이 있으나 녹아내릴 것 같은 몸은 어제 영양제 한 대를 다 들이부었는데도 돈 값도 하지 못하고 뻔뻔하게 아무런 기척이 없다. 자신감을 통째로 잃어버린다.






검게 그을린 팔로 둘러 맨 청춘의 무거운 배낭이 뜨거운 햇빛 아래 찬란하게 빛나 보였던 것은 내게 없는 팔팔함 때문이다. 무엇을 하든 용수철처럼 튀어 오를 듯한 에너지가 그들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다.

시간, 돈, 에너지! 이 세 가지가 한데 어우러지기란 무척 어렵다.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없고, 저것이 있으면 또 다른 것이 없으니, 우리는 언제나 갈증과 갈망으로 내일과 다음을 기약한다. 어쩌면 머물지 못할 내일에 실오라기 같은 희망을 걸쳐 놓는다.






그러고 보니 온전히 나를 기다려주는 것은 세상에 하나도 없다. 무언가를 할 채비가 끝날 때까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준비하고 스스로 채워야 한다. 행동하고 싶어도 이게 막히고, 저게 걸리는 이 막막한 현실에서 나는 어느 방향을 가고,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오후에 커피 한 잔을 마시며 곰곰 생각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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