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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해밀 Sep 11. 2023

나의 초록이여!




연필 두 자루를 깎았다. 2B 한 자루, 4B 한 자루. 칼에 베어 나가는 찰진 나무의 질감이 기분 좋다. 이 느낌이 좋아서 학생 때도 편리한 샤프펜슬 보다 나무 연필을 주로 썼다. 오랜만에 연필을 깎고 있으니 문득 학창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 어제 저녁에 미리 깎아 놓을까 하다가 연필 두 자루야 금세 깎겠지 하고 미루었더니 아침에 괜히 마음이 바쁘다.

오늘은 집 근처에 있는 대학교 평생 교육원에 수채화 수업이 있는 개강 일이다. 어반 스케치를 하다 보니 제대로 된 수채화를 배워보고 싶은 욕심이 생겨 강의 하나를 더 등록했다. 스케치북과 필요한 도구를 챙겨 학교로 갔다. 교정을 걸을 때마다 언제나 설렌다. 새로운 걸 배우러 가는 것이 좋아서 일 수도 있고, 마치 학생으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에 들떠서 일 수도 있다.







학교 여기저기에 풋풋한 학생들이 보인다. 싱그러운 초록 같은 젊음이다. 그들을 보며 생각했다. '저들은 자신들이 지금 저토록 눈이 부신 초록이라는 것을 알까?' 내가 그랬듯이 아마 잘 알지 못할 것이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나도 비로소 알았으니까......

누구나 그렇듯 지금 아는 걸 그때는 모른다. 어쩌면 나도 한참 후에 아는 걸 지금 또 모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직도 내게 초록이 남아 있다는 것을...... 그런데도 오늘은 눈이 부신 저들의 초록이 아찔하도록 부럽다. 훌쩍 지나온 나의 그때가 왕창 그립다.


종이 위를 서걱거리며 지나는 연필 소리가 내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나의 아우성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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