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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해밀 Sep 28. 2020

(일상)
보테로와 함께 떠난 여행


2020.05.26.  보테로와 함께




코로나로 발이 꽁꽁 묶인 요즘 그나마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문화생활이 영화다. 수영도 못 한 지 6개월이 넘었고, 어반 스케치도 마지막 수업을 남겨놓고 다시 불이 붙은 코로나 확산으로 중단되었다. 이따금 주말이면 하던 간단한 하이킹도 여름 땡볕에 밀쳐두고 있었다. 

영화관도 처음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라서 한동안 출입을 안 했는데 식당이나 카페 등 다른 장소에 비해 사전 점검이 잘 이루어지고 있어서 좋은 영화가 있으면 간간이 보러 간다. 좌석을 띄어 앉기도 하지만 예전에 비해 영화관을 찾는 사람들이 뚝 끊어져 눈으로 셀 수 있을 만큼 한산해서 다른 곳보다 오히려 안전하다는 생각이 든다. 인기 영화보다는 주로 아트영화 위주로 가다 보니 어떨 때는 상영관에 나 혼자일 때도 있다. 그럴 때는 극장 측에 슬그머니 미안한 마음도 든다.





"보테로"에 대한 영화가 다큐로 상영된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일찌감치 예매를 했다. 언젠가 뚱뚱한 모나리자 그림을 보고 신선한 그의 화풍에 유쾌해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슈렉의 엔딩 장면에 나온 퉁퉁한 피오나 공주처럼 그의 그림은 사람을 단번에 무장해제시키는 반전의 마력이 있다. 어떤 화가가 이런 그림을 그렸을까 하고 궁금해했었는데 더 이상 알아보지 못하고 있던 차에 영화 개봉을 알게 되었다. 게으른 나를 위해 찾아와서 알려주는 선물 같은 영화이다.





상영시간 두 시간을 앞두고 집을 나섰다. 요즘 들어 운동할 기회가 없어서 극장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어느 정도 걸릴지 몰라서 시간을 넉넉히 두고 출발했다. 코로나가 확산하는 이 와중에도 가을은 왔는지 바람을 시켜 오랜만에 도보로 나선 내 옷깃을 흔들며 아는 척을 한다. 

걷다 보니 여유가 있어 가는 길에 상점에 들러 필요한 물건도 사고, 새삼 모르고 있었던 주변 건물도 구경하는 사이로 모처럼 파란 가을 하늘과 눈도 마주친다. 느릿느릿 걷다 보니 극장에 도착하기까지 1시간 반 가량 걸렸다. 여전히 극장은 조용하고 겨우 서너 명이 띄엄띄엄 앉아 영화를 관람했다.





보테로는 콜롬비아 메데인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초창기 그의 작품은 우리가 알고 있는 화풍과 다소 차이가 있다. 오히려 진하고 굵은 선으로 힘 있는 작품을 선보였다. 그러다가 우연히 만돌린을 그리면서 앞면에 있는 구멍을 만돌린에 비해 아주 작게 그림으로서 그는 터질 듯한 볼륨감을 느꼈다. 그것을 계기로 모든 그림을 풍만하게표현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다소 거친 붓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고 세련된 형체감은 아니었다. 남미 특유의 원색도 거르지 않은 채 남아 있었지만 차츰 시간이 갈수록 색이나 형체가 다듬어지고 지금의 부드러운 색감으로 잘 어우러진 화풍으로 변해갔다. 





풍만한 형체도 그가 그린 그림의 가장 큰 특징이겠지만 우유를 섞은 듯한 부드러운 색의 표현도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보테로는 유난히 튀는 부분의 색을 용납하지 않았다. 우리가 보기에 그 정도는 괜찮을 것도 같은데 그는 여지없이 걸러냈다. 그 결과 그림 어느 부분도 혼자 튀거나 가시처럼 걸리는 부분이 없다. 

지금은 현존하는 작가로서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위치에 있지만 그러기까지 결코 순탄한 길을 걸어온 것은 아니다. 무일푼으로 오랫동안 경제적 어려움을 겪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뉴욕에서 활동할 때는 추상화가 그 시대의 시류를 이끌어 가던 거대한 흐름일 때조차 구상화가로서 제 자리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다 해 몸부림을 쳐야 했다. 





그는 풍만한 그림에서 느끼는 넉넉함이 좋다고 한다. 그것은 보는 이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그동안 일반적인 틀에 갇힌 미의 기준을 깨고 나온 못생기고 뚱뚱한 그의 그림을 통해 딱히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은 비단 나 혼자만은 아닐 것이다. 만인이 느끼는 통쾌함과 더불어 함께 느끼는 편안함은 그가 우리에게 주는 위안처럼 여겨진다. 





그가 늘 이런 유쾌한 그림만 그린 것은 아니다. 이라크 아부 그라이브 포로수용소에서 저지른 미군의 잔인한 포로 학대사건을 접하고 그는 다른 그림을 모두 접고 1년 이상 오로지 이 끔찍한 사건만 그려서 전시를 했다. 화가가 이런 그림을 그린다고 해서 직접 무엇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림 한 점, 두 점이 던지는 메시지는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고, 그는 그림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부르짖는 메신저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림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내 살점이 뜯겨 나가고 포로들이 겪었을 극한의 공포가 감히 짐작이 가는데, 1년 이상 이런 그림만 그리면서 그는 어떻게 버텼을까 싶다. 깨어 있는 의식의 울림이 계속 이어지지 않았다면 오랜 시간 동안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시위대를 이끌고 목에 핏대 세우며 소리 지르지 않아도 그는 그림을 통한 소리 없는 아우성이 멀리멀리 울려 퍼지게 했다. 





보테로는 그의 명성과 작품을 조국 콜롬비아에 헌정했다. 사비를 들여 구입한 모네의 그림을 비롯해 그동안 수집한 그림 모두를 콜롬비아 두 곳의 박물관에 기부했다. 단지 기부한 것에 그치지 않고 작품 배치를 비롯해 전시를 위한 모든 진행에 보테로가 직접 관여했다고 하니 그의 뜻깊은 헌정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같은 영화를 보고 나온 어느 중년 커플이 엘리베이터 앞에서 얘길 나눈다.
"우리나라에도 보테로 같은 화가가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

속으로 내가 먼저 대답했다.
'그러게요'





그에게는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자식들이 있다. 창고에 오랫동안 넣어두기만 한 습작들을 하나하나 펼쳐 정리하며 아버지와 화가로서의 고뇌를 작품을 통해 더듬어 간다. 보테로가 다 하지 못한 일을 수습해 주는 든든한 일꾼이다. 

'아버지가 유명한 화가니까 저게 가능하겠지. 팔리지도 않는 그림을 그리는 무명 화가라면 자식들이 저렇게 할까?' 하는 못되먹은(?) 생각이 펄펄 끓는 물에 밀려 올라오는 냄비 뚜껑처럼 들썩거린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한가득 쌓인 그림을 볼 때마다 그림 좀 처분하라고 했던 큰 아들 녀석이 자꾸 오버랩되어 혼자 빙긋 웃고 만다.





영화를 보는 내내 보테로가 그림을 그리기 위해 옮겨다닌 콜롬비아, 미국, 유럽, 멕시코 등을 따라다니면서 덕분에 그동안 굶주렸던 여행에 대한 간단한 요기를 할 수 있었다.  


몇 년 전, 낡은 벽화를 보는 순간, 반해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페낭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고, 프리다 칼로 그림을 보기 위해 올해 초 멕시코행 비행기 표를 끊었다. 코로나는 프리다 칼로의 그림은 고사하고 비행기 티켓 값조차 돌려받지도 못하고 날려버리게 했지만, 언젠가 보테로의 그림을 보기 위해 나는 또 콜롬비아행 비행기를 탈 것이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물감 냄새가 물씬 그리워지는 가을이다. 



*그림 출처 : 마노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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