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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해밀 Aug 23. 2020

(일상)
사는 것도 때가 있다

지금 하지 않으면 ......


2020. 07. 30.


오랜만에  그녀에게 연락을 해보았다.  연락을 못해본 지 일 년인가? 일 년 반인가? 가물가물해서 셈이 잘 되지 않는다. 언제나 내가 원할 때면 쉽게 연락이 닿을 거라 생각해서 그다지 애달파하거나 아쉬워하지 않았던 것 같다. 다람쥐 쳇바퀴 같은 삶 속에서도 이런저런 일로 늘 바쁘다 보니 일부러 시간 내어 연락해 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녀는 내가 다니던 피부관리실 원장이었다. 나보다 한 두 살 아래일까? 정확한 나이는 알지 못했지만 그녀는 나를 "언니, 언니"라고 부르며 언제나 살갑게 대해주었다. 장삿속으로  날리는 접대성 멘트가 아니고 진중한 사람이라 가끔 점심을 함께 하며 나도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던 중이었다.


쉽게 관리실을 바꾸지 않는데 15년 동안 다니던 샵에 일이 생겨 그녀가 하던 샵으로 온 지 6개월 정도 다닌 것 같다. 집에서 걸어 5분이면 되는 가까운 거리에 시설도 좋고 무엇보다 진심으로 대하는 그녀의 고객관리가 무척 맘에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8년 동안 운영하던 관리실을 접고 다른 원장이 운영하는 샵에서 일하기로 했다며 가게문을 닫게 되었다. 그나마 옮긴 곳이 내가 다니는 회사 본관이 있는 쪽이라 마음만 먹으면 만날 수는 있겠구나 하는 여지를 두고 훗날을 기약했다. "


"시간 되면 가끔씩 만나서 영화 보고, 차 한 잔 해요. 언니~~~"


나도 정말 그럴 요량으로 그러자고 했지만 헤어진 뒤로 단 한 번도 연락을 해보지 못했다.



그렇게 벌써 일 년 반이 흘렀나?  그동안 다른 관리실을 알아보고 다니면서도 가끔 그녀 생각이 났지만 일부러 연락해서 만나자는 약속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녀가 하던 관리실 건물을 지날 때마다 예전에 그녀와 함께 했던 시간이 떠올랐으나 늘 혼자 생각하는 것으로 끝을 냈다. 혹시라도 내 전화가 바쁜 그녀에게 부담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앞섰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회사에서 정기적으로 회의가 있어 한 달에 두 번은 본관에 들어가야 할 일이 생겼다. 문득 그녀 생각이 났다. 12시 전에 회의가 마치니까 만나서 모처럼 점심이나 하면 되겠다 싶었다.


카톡을 보냈다. 답이 없다.
문자를 보냈다. 그것도 답이 없다.

전화를 했다. 받지 않는다.
보이스톡을 시도했지만 마찬가지다.

무슨 일이 생긴 거냐고 문자를 남겼으나 여전히 답이 없다.


카톡은 읽은 것이 확인되었는데도 하루가 지나도록 가타부타 말이 없다. 프로필 사진으로 올려놓은 샵의 사진을 확대해서 검색해 보았지만 연락처를 찾을 수가 없다. 어디에 감금되어 있는 상태는 아닌지? 혹시 몸이 아픈 건가? 하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그럴 가능성은 그다지 없어 보였다. 평소 그녀는 건강한 편이었고 식습관이나 생활습관으로 볼 때 그다지 염려할 정도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무런 연락이 되지 않은 체 하루가 지났다.  다음 날 오전, 한참 회의를 하고 있는데 그녀로부터 전화가 왔다. 회의를 마친 후 다시 연락하겠다는 문자를 보내 놓고 나중에 다시 연락을 취해보았지만 또 전화를 받지 않는다. 연이어 시도를 해보았는데 역시나 마찬가지로 연락이 되지 않는다. 점점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갔다. 그렇게 한두 시간쯤 지났을까? 다시 그녀의 번호로 연락이 왔다. 급히 전화를 받았다.


"왜 이렇게 연락이 안 돼요?" 전화기를 열자마자 대뜸 성급하게 물어보았다.
"여보세요?" 난데없이 묵직한 저음이 전화기 너머 들려온다.
"실례지만 누구세요?"


오히려 저쪽에서 내가 누군지 묻는다. 000 씨가 샵할 때 마사지 회원이었음을 밝히자 그제야 그 남자는 000씨의 남편이라고 한다. 그녀와 통화를 하고 싶으니 전화를 바꿔달라고 했다. 그러자 그는 지금 그녀와 통화를 할 수 없다고 한다.



혹시나 하는 불안이 순식간에 나를 몰아세웠다.  다음으로 이어질 그의 말에 나는 긴장하고 있었다. 부디 최악의 말이 아니길 얼마나 빌었는지 모른다.


"지금 병원에 있습니다"
"어디가 아픈가요?"
"작년 5월에 뇌출혈로 쓰러졌는데 지금 재활병원에서 치료 중입니다."
"어떤가요? 면회는 가능한가요?"
"지금은 사람도 알아보고 조금 나아졌는데 처음에는 이만저만이 아니었어요. 면회는 코로나 때문에 안되고요. 그냥 번호만 떴으면 전화를 안 했을 텐데, 어제부터 계속 문자 오고 전화 오고, 이름이 저장되어 있길래 전화연락을 해보았습니다."
"녜. 감사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그럴 사람이 아닌데 계속 연락을 해도 연결이 안 되길래 무슨 일이 있나 했어요. 차츰 차도가 있다고 하니 다행이네요. "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전화를 끊었다.  조만간 그녀에게 면회를 가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한순간 차가운 물 한 바가지를 뒤집어쓴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미루며 살고 있는가? 내일도 오늘 같을 줄 알고, 내년도 금년 같을 줄 안다. 오늘 내 곁에 있는 사람이 내일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을 줄 알고, 내년에도 똑같이 나와 함께 할 줄 안다. 머릿속으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살면서 그런 생각은 어느새 뒤로 슬며시 밀쳐놓고 있다.


작년 5월이면 그녀는 가게를 접고 직장을 옮긴 지 얼마 되지 않아 쓰러진 것 같다. 병원생활을 한 지도 벌써 1년 하고 2개월이 지나고 있다. 뇌출혈로 쓰러지고 나서 정신이 되돌아왔을 때 확연히 달라진 자신의 모습을 인지한 후 그녀의 충격이 어땠을지 감히 상상할 수가 없다. 내가 어찌 그 참담한 심정을 미루어 짐작조차 할 수 있겠는가?



지금 내가 가진 것이 온전히 내 것이 아니고,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것 또한 영원하지 않다. 손을 뻗으면 언제나 닿는 자리에 있는 가까운 사람도 내일 어찌 될지 알지 못하는 현실에 살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너무도 쉽게 그 사실을 잊고 지낸다.


어쩌면 우리는 저 바닷가에 수없이 깔린 작은 조약돌처럼 하나가 더 늘어도, 하나가 없어져도 아무도 모를 존재인 것을, 그 사실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내 주변의 사람은 태산처럼  내 곁에 버티고 있을 줄 안다.


느리게 생각을 돌려본다. 그동안 안부가 뜸했던 사람은 없는지, 작은 서운함에 살짝 등 돌리고 앉은 사람은 없는지, 내일 해보지..... 하면서 연락을 미루고 있는 사람은 없는지, 언제든 부르면 달려올 거야 하며 자신만만하게 쟁여두고만 있는 건 아닌지.......



정신없이 살다가 문득 나를 잡아 세운 노란 신호등 앞에서 잠시 숨을 골라본다.  나는 지금 무엇을 향해 정신없이 치달리고 있는가? 그 때문에 미처 잊어버리고 있는 소중한 것은 없는지..... 사는 것도 때가 있는 것 같다. 너무 멀리 밀쳐두고 있는 것은 없는지 한 번 둘러보아야겠다.


그녀의 빠른 쾌유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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