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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해밀 Aug 16. 2020

(일상) 비우고 또 비우고!

덜어내는 연습


2020. 06. 18.  버리는데도 용기가.....

코로나 확진자가 조금씩 늘어나고, 그로 인한 추가 확진자들이 성난 들불처럼 번져갈 때도 이러다 조만간 잡히겠지 하는 생각으로 다음 여행을 기다렸다. 그러던 것이 어느새 반년이 되어간다. 하반기에는 다시 예전처럼 여행을 갈 수 있으리라 했던 확신에 찬 기대는 이젠 다 타 버린 지 오래다.



퇴근 후에 꼬박꼬박 집으로 바로 오고  주말에도 별 수 없이 방콕(?)을 하면서 그동안 안중에도 없던 집을 손대기 시작했다. 주방가구를 바꾸고 나니, 욕실이 거슬려 바꾸었다. 거실 벽과 천정 색을 바꾸고 가구를 갈아치웠다. 방 한가득 꽂혀 있는 책을 팔고, 그래도 수북이 남은 책은 급기야 처리업체를 불러 한 트럭 실어 보냈다. 책갈피갈피에 깃든 수많은 내 기억까지 그대로 실어 떠나보냈다.



그래도 그림만은 차마 어쩌지 못하고 있었는데,  방과 창고 한가득 쌓여있는 오래된 나의 그림들은 언제나 큰 아들로부터 지청구를 듣는 존재였다.

"어머니, 그림들도 좀 버리시지요?"

'망할 놈! 지가 그림을 그려나 봤나?'
'그림 한 점을 그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갈등과 씨름을 해야 하는지 지가 알기는 아나?'



아이들이 대여섯 살 때부터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 10년 넘게 그린 것 같다. 그림은 나에게 유일한 돌파구였다. 직장과 육아, 살림에 묶여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내게 일주일 단 하루, 물감 냄새를 맡을 수 있었던 그 2시간 동안은 오로지 나 자신으로 머물 수 있는 농축된 시간이었다. 그 시간이 없었다면 지금의 내가 있기는 할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렇게 쌓인 그림 한 점, 두 점은  나를 지탱해준 버팀목이었다. 완성된 그림 그 자체보다도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내가 누렸던 행복과 희열, 숱한 갈등 뒤에 선물처럼 받은 성취감, 그리고 그림이 주는 침묵의 위로는 가족이나 친구보다 더 굳건하게 나를 지켜준 든든한 나무 같은 존재였음을 아들은 절대 모를 것이다.



그렇게 분신 같은 그림들을 이번에 처분하기로 했다. 늙어가면서 이제 나도 하나, 둘 버리는 연습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훗날 그 안의 가치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그저 나무 판때기, 그림 연습장 정도로 여기며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게 하는 것보다는 내 손으로 정리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마음먹었다.  



나이를 먹는 만큼 비우고, 덜어내야 마음이 가벼워질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드는 것을 보니 나도 이제 늙긴 늙은 모양이다. 물질이든, 감정이든 움켜쥐고 있는 만큼 힘들다는 것이 새삼 느껴진다. 나이 들면서 몸이 늙어가듯, 감정의 기력도 점점 사위워가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쉽게 그림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옆에서 아들이 자꾸 채근을 하니 은근 야속하고 심통이 나면서도 이젠 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조바심이 들기도 했다.



쓰레기로 처분하기에는 내 살점 같은 그림들이라 벼룩시장에 내어놓았다. 혹시나 소중히 해 줄 주인을 만나면 뽀개지고 버려지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해서였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재빠르게 구입 의사를 전해왔다.



그들 중에는 그림을 그려본 사람,  혹은 그림을 이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캔버스 한 장 값도 안되는 터무니 없는 가격에 그림을 구하게 되어 고맙다는 말을 건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조차 일반 공산품처럼 가격을 흥정하는 사람들 앞에서 내 심장은 숭덩숭덩 시뻘건 선지처럼 베어 지는 것 같았다.

'그래, 내 살붙이 아들 녀석도 모르는데 남들이 어찌 알꼬?'



그래도 웬만큼 그림을 아껴줄 분들이 2~3점,  많게는 6점을 가져갔다. 이 글을 쓰다 보니 떠나보낸 그림 한 점, 한 점에 대한 기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나는 것 같다. 족보 같은 그림 서너 점만 간직하고 대부분의 그림은 새 주인을 만나서 갔다.



"이사한 지인들한테 집들이 선물로 그림을 주니까 참 좋아하더라고요"

하면서 5점을 가져간 분은 굳이 하지 않은 사인을 해달라고 한다. 더 좋은 그림을 그리면 해야지 하면서 사인을 하지 않은 그림이 대부분이다. 사인에 대한 무게감 때문이었을까? 그동안 나는 쉽게 사인을 하지 못했다.  내가 만족하지 않은 그림에 마침표를 찍는다는 것이 주저주저해서 일부러 비워두었던 것이다.



집 정리를 하면서 붓도 깡그리 다 없애서  사인할 붓이 없다고 해도 그분은 전혀 물러날 기색 없이 집요하게(?) 사인을 요구했다. 마침 물감이 몇 개 남아 있고, 작은 오일도 하나가 있어서 하는 수 없이 임시방편인 면봉으로 붓을 대신했다.



오일을 흥건히 붓고 물감을 섞어 졸업식 송사 같은 사인을 했다.  몇 년 만에 해보는 사인이라 처음에는 어색하더니 자꾸 하다 보니 마지막을 장식하는 휘날레 같은 요염한 기교가 속절없이 고개를 쳐든다. 그렇게 뒤늦은 사인을 모두 해서 한 무더기, 두 무더기 그림을 꾸려서 떠나보냈다.



뒤돌아 생각해 보면 그림을 그리는 동안만큼은 고스란히 나 자신으로 머물 수 있었다.  늘 동동거리며 직장과 가정에 온 힘을 쏟아부으면서도 살모사 대가리처럼 꼿꼿이 고개를 쳐드는 나 자신에 대한 갈망과 갈증을 원 없이 해소할 수 있었던 곳이 이젤 앞이었다. 1주일에 6일을 하녀처럼 일을 해도 단 하루, 2시간 동안 이젤 앞에 앉았을 때, 나는 세상 부러울 것 없는 당당한 여왕이었다.



오일 냄새에 취해 때로는 나 자신도 잊어버리고 그저 그림 그리는 한 사람으로 남아 있었다. 물감 냄새에 많은 것을 삭히며 버티기도 하고, 몇 번이고 두텁게 덧칠하는 붓질에 차마 다 뱉지 못하는 속앓이를 그 안에 풀기도, 묻기도 했다. 그렇게 그림은 나의 속 이야기를 다 들어주는 속 깊은 친구 그 이상이었다.



미친 듯이 바쁜 30대를 보내고,  때 아닌 질풍노도 같은 40대에 어이없이 휘청이기도 하고, 60을 바라보는 지금에도 여전히 나는 꾸역꾸역 삶의 숙제를 하고 있다.



혼돈의 20대에 서른이 되면 편안할 줄 알았는데,  눈, 코가 제대로 붙어 있는지도 모를 만큼 정신없이 바빴던 30대에 나는 불혹의 마흔을 파라다이스처럼 학수고대했다. 기대했던 40대도 별 수 없이 지나며 슬금슬금 쉰을 기웃거려 보았지만,  50이라는 나이는 어릴 적에 내 발가락을 쏘고 달아난 벌처럼 내 마음을 팅팅 불어 터지게 했다.



그러고 보니 모든 나이마다 치루어야 하는 인생의 과제가 있는 것 같다. 지금이 흘러가면 평안할 것 같아도 또 그다음 나이에는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흔들어댄다.



인생이 통째로 허무하게 느껴졌던 50대에  나는 생각의 무게를 토하고 또 토해냈던 것 같다. 그렇게 비움을 통해 깃털 같은 가벼움 뒤에 인생의 진중함을 알 수 있으니 이 무슨 아이러니일까? 마음이든, 물질이든 그동안 거머쥐고 있던 것을 비우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란 것을 이번 일을 통해 또다시 알게 되었다. 오랫동안 버티고 있던 책상을 비워낸 자리에 장판이 움푹 패었다. 내 안에도 그렇게 패인 자리 두 어개가 생겼다.



책을 비워낸 책장에 고양이가 낼름 들어와 앉는다.  청소하느라 이리저리 다니는 나를 지치지도 않고 따라다니더니 텅 빈자리에 앉았으니 녀석이 더 또렷이 보인다.


' 그래, 비우니 더 잘 보이는구나......'



거실에 어지럽게 그림을 널어놓고 사람들에게 선을 보일 때는 모르겠더니 한 무더기 빠져나가고 텅 빈자리를 돌아보니, 그동안 간직했던 수십 년의 시간을 단번에 떠내려 보낸 것 같아 남은 그림을 마주보며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나뭇잎 하나하나에 깃든 갈등, 제대로 살리지 못한 핏빛 같은 붉은색, 세차게 부딪히는 햇살 한 줄기를 그리기 위한 몸부림까지 성난 혓바늘처럼 살아 고스란히 느껴지는데, 모든 게 떠나간 빈자리에 나는 그저 빈 허깨비처럼 남아있다.



한 바탕 전쟁처럼 치르고 난 뒤 거실에 퍼질고 앉아  나무 똥가리에 북북 사포질을 했다. 아직도 여전히 거친 내 생각을, 떠나간 그림을, 휑한 책꽂이 같은 마음을 떨구려 꾹꾹 힘을 주어 밀고 또 밀었다. 나무를 갈고 색을 입혀 작은 화분과 받침대를 만들었다.

페루 우로스섬에서 사 온 인형 두 개가 청포도색 다육이 옆에서 산초씨 같은 눈으로 말을 한다.

"나는 떠나보내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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