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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해밀 Aug 21. 2020

(일상)
어쩌다 우리는......

팔자에도 없는 집사가 되다


                                                                                            

2016년 12월 팔자에도 없는 집사가 되다


추적추적 겨울비가 내리던 어느 날,  저녁 수영을 마치고 8시 반쯤 집에 도착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나오는데 어디선가 여린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아  울음소리조차 싫어했다. 그날도 별생각 없이 지나치려는데 바로 차 앞에 까맣고 작은 새끼 고양이가 길을 막고 앉아 나를 빤히 쳐다보며 울고 있다.


                                                                                               

"엄마 어디 갔어? 엄마한테 가~~~ 비에 다 젖잖아."

비에 젖은 새끼 고양이가 딱해 보이기는 했지만 딱히 무엇을 해주어 한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알아듣든지 말든지 엄마 고양이를 찾아가라 하고 주차장을 빠져나오는데 녀석이 졸졸 나를 따라온다. 계단을 올라가니 녀석도 저한테 버거운 계단을 낑낑대며 두세 계단을 따라 오른다. 그러는 녀석을 두고 혼자 갈 수 없어 다시 문 밖으로 나왔다. 혹시라도 엄마를 찾아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리저리 엄마를 찾아보았다.

그러나 녀석은 애당초 그럴 생각이 전혀 없이 오히려 나를 따라온다. 녀석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 우중에 혼자 동동거리고 있었다.


                                                                                                  

마침 근처에 사는 친정언니가  개와 고양이를 키우고 있어서 전화를 했다. 대충 상황 설명을 했더니 일단 집으로 데리고 가서 하룻밤을 재우라고 한다. 오늘은 비가 오고 추우니까 보내더라도 내일 보내면 되지 않느냐고......


헐!!!!!!! 

반백년이 넘도록 단 한 번도 고양이를 안아본 적도 없는 나더러 데려가라고 하니 난감하기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한 마리 키우나, 두 마리 키우나 거기가 거기니까 언니가 데려가서 재우라고 하니까 성질 더러운 개 때문에 안된다고 단칼에 못을 박는다. 하룻밤 자는 거니까 괜찮겠지...... 겨울비 내리는 한 밤에 새끼 고양이를 나 몰라라 하고 가면 집에 돌아가서도 왠지 맘이 편치 않을 것 같았다.


                                                                                                          

난데없이 고양이 한 마리를 안고 집에 들어서자 남편과 아들이 화들짝 놀란다. 특히 동물을 엄청 싫어하는 남편은 고양이를 왜 데리고 왔냐고 칠색팔색이었다. 상황 설명을 해주고 하룻밤만 재워서 내일 다시 보낼 거라고 얘길 했다. 

일단 제일 먼저 녀석을 목욕시켰다. 녀석은 연신 바들바들 몸을 떨며 울어댔다. 정신없이 녀석을 씻기고 나서 언니가 가져다준 모래를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주었다. 적당한 그릇이 없어 대충 손에 잡히는 아무 그릇에다 담아 주었는데 녀석한테는 제법 높이가 있다. 그래도 용케 알고는 산을 등반하듯 올라가서 용변을 보고 다시 내려온다.  


                                                                                                   

그렇게 난생처음, 고양이와 뜻하지 않은 하룻밤의 동숙을 하게 되었다. 고양이가 하루 쓰고 버릴만한 수건과 담요를 찾아 깔고 덮어주었다. 언니가 준 사료 몇 알과 우유를 데워주었더니 조금 먹는 둥 마는 둥 하고는 이내 쓰러져 잠이 들었다. 


낯선 곳에서 이 작은 녀석은 앞날에 대한 불안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곤하게 잠을 잔다. 내일이면 다시 헤어져야 하지만 그래도 오늘 녀석은 참 예쁘다. 


                                                                                                        

녀석을 보내기로 한 다음 날도 비가 왔다.  암만 그래도 비 오는 날 녀석을 보내는 건 아니다 싶어 하룻밤을 더 재우기로 했다. 비가 그치면 그때 보내야지........ 그다음 날은 다행히 날씨가 맑았다. 퇴근해서 녀석을 안고 1층으로 내려갔다. 


"녀석 보내주고 올게" 


하고는 호기롭게 집을 나섰다. 다행히 날씨가 매섭게 춥지는 않았다. 바닥에 녀석을 살며시 내려놓았다. 이제 엄마를 찾아서 쌩하니 달려가겠지. 

"..............................엥?"

녀석은 내 주변을 맴돌 뿐 돌아갈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여기저기 냄새만 맡으며 돌아다닐 뿐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엄마한테 가~~~"


                                                                                                    

"녀석이 통 돌아갈 생각을 안 하네?"  119 친정언니에게 전화를 했다. 
"그냥 네가 데리고 가서 키워. 그것도 좋은 일 하는 거야."

나는 그동안 너무 착하게 살아와서 굳이 더 이상 착한 일을 할 필요가 없다. 언니가 데리고 가서 키우라고 길바닥에서 또 설전을 벌였다. 지금도 길줍해서 키우는 성질 더러운 개와 고양이 두 마리 키우는 것도 버거운데 거기에다 한 마리 더 얹는 건 절대 못한다고 한다. 무참하게 참패를 하고 돌아섰다. 

"아니, 왜 다시 데리고 온 거야?"

남편의 거센 반응이 제일 먼저 나를 막아섰다. 전혀 돌아갈 마음이 없는 녀석에 대해 설명을 하고 키워야겠다고 했다. 고양이 털이 온 집에 다 날릴 거라며 남편은 갖은 구실을 다 대며 저항을 했다. 그래도 추운 겨울에 조막만 한 녀석을 버리다시피 내보낼 수는 없지 않느냐는 최후통첩을 날리고 그렇게 녀석은 한순간에 우리 집 막내아들이 되었다. 


                                                                                                           

의외로 녀석은 까탈스럽지 않고 주는 대로 잘 먹고,  잘 놀고, 그러다 지치면 아무데서나 꼬꾸라져 잘 잤다. 아주 오래전부터 이 곳에서 살았던 것처럼 지냈다. 그렇다고 한꺼번에 곁을 내어준 건 결코 아니다. 한 번 안아볼라치면 번개 같이 도망가고, 구석에서 빤히 지켜보기만 할 뿐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 언니네서 안 쓰는 고양이 침대도 얻어오고, 조카한테서 고양이 키우는 법도 배워가며 조금씩 조금씩 초보 집사가 되어 갔다. 

그러던 며칠이 지나 온몸에 빨간 두드러기 같은 게 생기기 시작했다. 아들도 마찬가지였다. 피부병이라곤 모르고 살았는데 난데없는 두드러기에 놀라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대뜸 첫마디가,

"혹시 집에 개나 고양이 키우세요?" 

나는 점쟁이 앞에 앉아 있는 줄 알았다. 키운 지 1주일도 안되었는데 피부과 의사가 그걸 어떻게 알았지 싶었다. 

"녜. 근데 어떻게 아셨어요?"
"갑자기 개나, 고양이를 키우면 이런 두드러기 반응이 올 수도 있어요. 약 처방해드릴게요."


                                                                                              

그날 저녁, TV 앞에 앉은 남편이  다리를 벅벅 긁으며 요즘 이런 게 생겼다며 다리를 보여주었다. 보니 모양새가 나와 똑같았다. 차마 고양이 때문이라는 말은 하지 못하고 잘 듣는 피부약이 있다며 슬쩍 발라주었다. 며칠 뒤에 보니 남편 다리가 멀끔해졌다. 그즈음 나도, 아들도 두드러기가 잦아들고 있었다. 그렇게 녀석은 진하게 전입신고를 했다. 

그러나 귀여움도 잠시, 수시로 귀를 긁는 녀석의 손짓이 수상했다. 귀를 털고 나면 그 자리에 검은 부스러기 같은 것이 우수수 떨어진다. 귀 안을 들여다보니 온통 귀안이 꺼멓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고양이 귀가 원래 그런 색인 줄 알았다. 암만 봐도 이상이 없는데 녀석은 왜 수시로 귀를 털어대는지 모르겠다. 길고양이니 예방접종이나 건강체크를 해보는 게 좋다는 조카 말에 동물병원에 데리고 갔다. 


                                                                                            

수의사는 태어난 지 두 달 정도 된 것 같다고 한다. 길에서 생활하다 보니 귀 안에 진드기가 많이 있어 귀 청소를 해주어야 한단다. 귀를 까맣게 덮고 있던 것이 진드기 때문인 줄 그제야 알았다. 그 뒤로도 몇 번을 병원을 들락거리며 예방접종과 귀 청소, 몇 달 뒤에는 중성화 수술까지 했다. 

언젠가는 밤에 뛰어다니다 다리를 저는 것 같아서 다친 줄 알고 놀라서 아들과 함께 황급히 응급실을 찾아 X-ray를 찍고 야단법석을 떨었는데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한다. 10만 원을 순식간에 까먹고 집에 돌아오니 정말 멀쩡하게 잘도 뛰어다닌다...... 미치고 팔짝 뛸 노릇!


                                                                                                      

입양 초반의 병원비를 비롯하여 녀석의 살림살이를 구입하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어갔다. 백만 원을 훨씬 웃도는 초기 비용에 어설픈 냥줍을 후회하기도 했다. 누군가 작자(?)만 나선다면 넘겨주고 싶은 심정이 굴뚝같았다. 

"이모, 처음이라서 돈이 좀 들지, 조금 지나면 괜찮아져요. 참으셔요"
조카의 위로가 없었다면 아마도 호객행위를 해서라도 녀석을 떠넘기지 않았을까 싶다.


                                                                                                   

동물병원에 간 첫날,  접수원이 고양이 이름이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컥! 전혀 생각해 보지 않은 일이다. 강아지처럼 귀엽다고 평소에 강생이, 강생이 했더니 난데없이 아들이 줄여서 그냥 "생이라고 했어요"라고 한다. 그 날 이후 녀석은 "생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병원에서 애완동물 이름으로 진료카드 등록을 한다는 것도 처음 겪는 생소한 일이었다. 그렇게 녀석은 생이라는 이름으로 동물병원에 호적을 올렸다.

조막만 하던 녀석은  내가 주는 밥을 먹고 하루하루 눈에 띄게 자랐다. 뜀박질도 잘하고, 제법 높은 곳도 뛰어오른다. 내가 밥 주는 어미인 줄 아는지 이리저리 귀찮을 정도로 따라다닌다. 자격증 시험 때문에 컴퓨터로 공부하고 있으면 어느새 쫓아와 같이 공부할 태세를 갖춘다. 컴퓨터를 끄고 자리를 뜨기 전까지는 꼼짝없이 녀석도 책상 주변에서 논다. 뒤통수만 보면 영락없는 수험생이다. 

                                                           

                                    


조용해서 가만히 찾아보면  녀석은 소파에 누워 저리도 편하게 잠들어 있다. 설 명절 연휴 동안 식구들이 서울에 다녀오느라 집을 비운 사이 녀석은 혼자 집에 있어야 했다. 처음으로 아무도 없는 빈 집에 혼자 있었던 것이 힘들었을까? 마치 명절증후군을 앓는 주부처럼 완전 떡실신이다. 혼자 있으면서 녀석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다들 어딜 갔지?'
'언제 오는 거야?'
'돌아오기는 할까?'

나를 기다리기는 했을까? 나를 궁금해하기는 했을까? 조막만 한 녀석의 머리에 들어가 보고 싶다.

                                                                                                     


가끔 녀석은 하염없이 베란다 문을 통해  밖을 쳐다보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내가 괜히 녀석을 붙들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다 아무 데나 떡실신해 자고 있는 걸 보면 괜한 생각인가? 마음이 요랬다 저랬다 한다. 고양이는 영역 동물이라 그렇다고는 하는데 이따금 밖을 바라보는 녀석의 뒷모습이 마냥 쓸쓸해 보여 나의 냥줍이 잘못된 건 아니가 하기도 한다.

                                                                                                            

                                                                                                          


여행을 가기 위해 가방을 싸고  있으면 어느새 녀석이 먼저 다가와 가방을 차지한다. 고양이를 키우면서 가장 아쉬울 때가 여행을 떠날 때다. 1년에 4~5번 해외여행을 한다. 그럴 때마다 큰 아들에게 고양이를 부탁하고 가는지만, 긴 여행을 갈 때는 가까이 사는 조카에게 고양이 좀 챙겨봐 달라고 이중으로 부탁을 하곤 한다. 어쩌면 여행에서 아쉬운 것은 녀석보다 나 자신일지 모른다. 주로 혼자 여행을 다니다 보니 저녁에 숙소에 돌아와 쉬다 보면 가장 많이 생각나는 것이 녀석이다. 안부가 궁금해 아들에게 사진을 찍어 보내라고 하기도 한다. 

"생이가 엄마 보고 싶어 하지 않아?"
"보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이 방 저 방 다니면서 자꾸 울어요"

나도 그랬다. 나도 녀석을 많이 보고 싶어 했다.

                                                                                           

여행에서 돌아와 문을 열면  생각지도 못한 방문이 엄청 반가워서일까? 녀석은 베란다에서 볕을 쬐고 있다가 "야옹~~~~~~" 하며 마치 강아지처럼 쏜살같이 거실을 가로질러 내게 달려온다. 한참 동안 내 발치에서 배를 보이며 뒹굴고, 꼬리를 문지르며 갖은 교태를 다 부린다. 나도 녀석이 반갑다. 녀석도 진심 내가 반갑고 보고 싶었을까? 녀석도 그리움이란 걸 알까?    

                                                                                                                                                                                                       

                                                                                                            

녀석을 혼자 두고  집을 나서는 것이 이제는 어지간히 적응이 될 만도 한데 여전히 녀석은 나를 슬프게 한다. 그게 싫어서 간식을 주고 나오기도 하는데 준 간식을 정신없이 먹다가도 소리 나는 현관 쪽을 바라보고 있으면 발걸음이 쉬이 떨어지지 않는다. 

"얼른 갔다 올게"

하는 인사를 하지만 녀석은 안다. 해가 져야 돌아올 것이란 것을.  하루 종일 혼자 있어야 하는 것도 알 것이다.

                             

                                                                            


햇빛 잘 드는 곳을 찾아  저렇게 돌아누워 있는 녀석의 뒷모습을 보면 우습기도 하고, 애잔해 보이기도 한다. 창문이 녀석에게 맞추었을까? 녀석이 창문만큼 자란 것일까? 창틀이 아플까 봐 수건을 돌돌 말아 베개처럼 해주었더니 군소리 없이 베고 누워잔다. 

                                                                                                                                                     

                                                        


남들처럼 예쁜 목줄도 해보고 싶고,  철 따라 각양각색의 옷도 입혀 보고 싶었다. 모처럼 시내에 친구를 만나러 갔다가 맞은편에 애완용품점이 있어서 옷 두어 벌을 샀다. 눈대중으로, 손대중으로 기억하며 "우리 집 고양이는 요만해요"하며 손을 벌려 보이며 옷을 샀다. 돌아오자마자 옷을 입혀보았는데 영락없이 동생 옷 뺏어 입은 깍두기 형님 꼴이다. 

눈으로 볼 때 작은 사이즈가 아닌 것 같은 옷이었는데 어느새 녀석은 그 보다 더 자라 있었다. 옷이 딸려 올라가 겨우 가슴팍에 가서 걸려있다. 기념으로 사진 한 장 찍고는 버렸다. 사이즈도 그렇지만 생전 입어보지 않은 옷을 녀석은 거의 발광하다시피 벗으려고 몸부림질 쳤다. 

"그래, 그냥 살던 대로 살아"

                                                                                                       

그 이후로 녀석의 몸에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았다. 중성화 수술을 하고는 목 깔때기를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목을 흔들어대며 기어코 벗어던진 녀석이니 옷이야 오죽 갑갑하랴 싶다. 병원에서 상처보호를 위해 하루나 이틀 정도는 깔때기를 차는 게 좋다고는 했지만, 녀석은 과감하게 내팽개치고도 상처가 덧나지 않게 잘 버텨주었다.                                                                                                         

                                                                                                            


겨울에는 거실이 추울까 봐  숨집을 사주었는데 몇 번 들락거리더니 이내 자격 박탈이다. 거실이 추우면 머리로 "콩"하니 안방 문을 치받아 열고는 안으로 들어와 이불속을 파고든다. 밤새 팔베개를 해주느라 제대로 몸도 뒤척이지 못하고, 화장실도 참아야 한다. 게다가 그것도 머리라고 팔까지 저려오는 것을 참고 있다 보면 긴긴 겨울밤 집사의 운명이 참 고달프다는 생각을 몇 번이고 곱씹곤 한다.      

                                                                                                     


따뜻한 곳은 귀신 같이 안다.  겨우내 거실에서 쓰던 전기난로를 치우고 나니 아침저녁으로 가끔 쌀쌀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녀석은 열 받은 TV 셋톱박스에 올라가 앉는다. 제 궁둥이 큰 건 아직 모르고 작은 셋톱박스 위에 기어코 큰 엉덩이를 얹어놓고 앉은 시늉(?)을 하거나 턱을 괴기도 한다. 그러다가 아예 배를 깔고 자기도 한다. 그러는 동안은 할 수 없이 강제 채널 고정이다. 

우연찮게 시작한 인연이 이제는 여행 가면 가장 많이 생각나는 가족이 되었다. 내가 낳은 아들 선물은 안 사 와도 내가 주워 온 녀석의 장난감은 꼭 사 온다. 이따금 버라이어티 한 사고를 쳐서 뒷목 잡게 할 때도 있지만, 앞 목 잡고 구를 정도로 기쁨을 주기도 한다. 

내 발자국 소리를 알고 비밀번호 누를 때 미리 현관에 나와 기다리고 있다.
아침마다 머리맡에 앉아 부드럽게 나를 깨운다.
아들도 안 해주는 안마를 고사리 같은 손으로 꼭꼭 야무지게 해 준다.
쫄쫄, 짤짤 따라다니며 심심치 않게 해 준다.
혼자 있을 때조차 혼자인 줄 모르게 한다.
여행 갔다 돌아오면 어느 누구보다 가장 나를 격하게 반겨준다.

녀석도 알까? 내가 아주 가끔 셋톱박스를 질투하고 있다는 것을...... 
녀석을 만나고 비로소 알았다. 세상에 허투루 대할 인연은 없다는 것을......
어쩌다 우리는 사람과 고양이로 만났지만, 우리는 그렇게 살고 있다.
때로는 같이 고양이인 것처럼, 때로는 같이 사람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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