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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해밀 Apr 08. 2024

삶의 더께




시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나이가 들면서 간간이 주변 사람들의 죽음을 접해왔으면서도 여전히 낯설다. 세상에 어떤 죽음이 익숙할까? 94세라고 하면 흔히 호상이라고 하지만 어머니를 잃은 자식에게 호상은 없는 것 같다.  

10여 년 전,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가 생각났다. 정신없이 장례를 치른 후 조용해지고 나서야 비로소 쓰나미 같은 슬픔이 몰려왔다. 빈 방에 홀로 앉아 터져 나오는 소 울음을 주체할 수 없어 수건으로 입을 틀어막고 꺼이꺼이 소리 내어 울었다. 









엄마가 누워 계시던 병원의 빈 침상이라도 보고 와야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침 집에서 가까운 병원이라 걸어서 가는 동안 시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어머니, 친정 엄마가 보고 싶어서 전화했어요. 그래도 이 세상에서 제가 어머니라고 부를 수 있는 어머니가 있어서 다행이에요. 혹시라도 제가 가끔 엄마가 보고 싶어서 전화를 하더라도 귀찮아하지 말고 받아주세요"

"그럼, 전화해. 얼마든지 전화해"









그랬던 시어머니도 이젠 먼 길을 떠나셨다. 결혼이라는 관계가 만들어낸 가족! 그 처음의 어렵고, 어색했던 관계가 세월에 곰삭으며 고단한 여인의 삶이 깃든 시어머니의 깊은 주름이 가슴 아프게 다가온 것은 내가 50을 넘어서고 나서였다. 

시어머니가 친정어머니 일 수 없고, 며느리가 딸 일 수도 없다. 그럼에도 당신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내게도 친정어머니가 있었고, 나 역시 엄마이기 때문이었다. 비록 각자 서 있는 위치는 다르지만 그 자리가 주는 의미는 같은 것이기에 그런 마음으로 바라보고 이해하려고 했다. 완벽할 수 없고, 빈자리는 듬성듬성 있었지만 그것이 내가 다 한 최선이라 그대로 두려고 한다. 









장지로 떠나기 전, 그동안 어머니가 사시던 집에 잠시 들렀다. 휴가를 해서 다니러 가면 분주하게 음식을 해주시던 주방에는 만지다 만 그릇들이 이리저리 널려 있고, 잠시 다니러 나간 것처럼 아무렇게나 벗어 놓은 패딩 조끼는 방바닥에 무심히 놓여 있었다. 금방이라도 다시 돌아와 입을 것처럼...... 

삶이 벗어던져 놓은 패딩 조끼처럼 턱없이 가볍고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겨졌다. 바로 며칠 전까지 등이 시려 입고 있었을 그 옷에는 아직도 체온이 남아 있을 것 같은데, 내팽개치듯 벗어 놓고 갈 만큼 무엇이 그리 황급했던 건지...... 집 안 구석구석을 돌아보는 동안 수 십 년 세월의 묵은 기억들이 오롯이 되살아났다. 









그 세월 동안 닥치는 대로 살고 보니 어느새 나도 60을 넘긴 자리에 서 있다. 돌아보니 갖은 희로애락이 수를 놓은 듯 그 안에 소소소 깃들어 있다. 한 땀, 한 땀이 내 삶의 더미가 되어 있다. 


툭 벗어 놓은 시어머니의 조끼처럼 가벼워서 덧없이 흘러가고 말 민들레 홀씨 같은 이 삶에 나는 그동안 내가 부여한 무거운 추에 매달려 살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지나온 내 삶의 더께를 더듬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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