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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해밀 Apr 13. 2024

결국 그 자리




친정 언니들과 다음 날 점심을 집에서 먹기로 해서 마트에 장을 보러 갔다. 계산을 하려는데 계산원과 서로 아는 사이인지 비슷한 연령대의 중년 아낙과 두 사람은 연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계산을 하면서도 계속 열을 올리며 이야길 하길래 자연스레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아는 지인이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크게 다친 것 같지는 않은 것 같았다. 한의원에 가서 치료하고, 약 짓고 하면 된다는 누군가의 조언에 따라 하루에 50만 원이 드는 고가의 치료와 한약을 지었다고 한다. 그리고 지어온 한약은 본인이 먹는다는 대충 그런 내용이었다. 




© towfiqu999999, 출처 Unsplash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몇 년 전에 겪었던 오토바이 사고가 생각났다. 비보호 좌회전 구역에서 좌회전을 하려는데 건너편에 정차해 있던 택시가 갑자기 출발하는 바람에 충돌할 것 같아서 좌회전을 하려다가 급히 멈추었다. 

도로는 왕복 4 차선이었는데 도로는 텅텅 비어 있었다. 그래서 중앙선을 살짝 물고 있었지만 그대로 있다가 다음 기회를 기다려도 될 것 같았다. 그때 저 아래 맞은편 2차선에 있던 오토바이가 갑자기 굉음을 울리며 전 속력으로 달려 1차선으로 오더니 내 앞에서 큰 원을 그리며 미끄러졌다. 




© mullyadii, 출처 Unsplash




텅 비어 있는 2 차선을 마다하고 굳이 일부러 1 차선으로 들어와 내 차 앞에서 아무런 충돌 없이 혼자 미끄러지며 그는 멋들어진 곡예를 부렸다. 아마도 내가 중앙선을 물고 서 있으니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쏜살같이 달려와 고의로 사고를 낸 예술(?)이 분명했지만 경찰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괜찮냐? 는 나의 질문에 전혀 공감할 수 없는 어색한 그의 신음 소리를 들었을 때부터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많이 불리한 상황이 억울했지만 그걸 해명하기 위해서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클 판이었다. 게다가 그는 형사 합의를 해주지 않은 대가(?)로 3주 진단서를 훈장처럼 들이밀었다. 형사 합의금을 줄 바에는 차라리 벌금 내는 쪽을 택했다. 




© vladdeep, 출처 Unsplash




그러다 며칠 지나지 않아 아침 일찍 출근을 하는데 집 앞 사거리에서 신호 대기 중에 앞을 지나쳐 교차로를 달려가는 그를 보았다. 사고가 났던 그날 입었던 똑같은 색 바랜 보라색 점퍼를 입고 이른 아침부터 오토바이를 타고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었다. 씁쓸했다.

3주가 며칠 만에 지난 것일까? 출근해서도 한동안 마음이 무거웠다. 그동안 겨우 마음을 진정시켰는데 가라앉았던 앙금이 다시 소용돌이치는 것 같았다. 그 절묘한 곡예로 보험사로부터 받아낸 합의금이 살림에 보탬이 되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행복했는지도 물어보고 싶었다. 




© lazargugleta, 출처 Unsplash




이제는 가구마다 차가 없는 집이 거의 없고, 한 가구에 2~3대도 드문 일이 아니다. 그만큼 차량 사고는 다른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피해자가 될 수도 있지만 언제든지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살풋 난 교통사고를 마치 재수 좋은 로또쯤으로 여기는 것 같다. 

덕분에 나는 면허 취소가 되어 안전 교육을 받아야 했다. 그곳에서 만난 옆 짝지의 일화가 교훈처럼 귀에 맴돈다. 

"두 달 전에 적당(?)한 사고가 나서 합의금으로 200만 원 정도 받아서 재밌게 잘 썼는데 이번에는 내가 사고를 내서 차 뽑은 지도 얼마 안 되었는데 내 차는 박살 나고 천만 원 이상 물어주게 되었지 뭐예요. 호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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