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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해밀 May 24. 2024

자리를 바꾸어보니......



3년 전, 퇴직 후에 살 조용한 곳을 찾다가 한적한 지역에 신축 아파트를 계약했다. 그때는 3년이라는 시간이 까마득하게 여겨졌는데 어느새 입주할 시기가 되었다. 막상 입주할 때가 되니 익숙한 곳을 떠나는 것이 쉽지 않다. 조용해서 선택한 곳이 너무 조용해서 망설여지는 변덕에 입주를 주춤거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아들 녀석이 가을에 결혼을 하겠다는 전격 발표(?)에 더 이상 미룰 수가 없게 되었다. 녀석도 집 근처에 있는 아파트 청약이 되어 4년을 기다려야 해서,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아들에게 내어주고 내가 분가(?) 하기로 했다.







얼떨결에 아들의 결혼이 이럴까 저럴까 망설이던 결정을 속 시원하게 해결해 준 셈이 되었다. 분분했던 생각을 종결지으며 필요한 절차를 밟았다. 옵션으로 하지 않은 공사를 하나하나 진행하고, 취득세 신고와 등기를 내가 해보기로 했다. 백수가 되니 시간 여유가 있어 선뜻 마음먹을 수 있었다.

신고에 필요한 서류를 꼼꼼히 챙겨서 구청과 등기소를 방문했다. 마치 면접시험을 보러 가는 취준생 같은 기분이었다. 이리저리 알아보고 준비를 하느라 했지만 그래도 놓친 부분이 있지 않을지, 이제는 입장이 바뀌어 내가 민원인이 되는 새로운 경험에 긴장되기도 하고 설레기도 했다.







같은 날, 두 관공서에서 각기 다른 두 담당자를 경험했다. 사람의 행동은 성격이나 성향에서 비롯될 수 있으니 모든 몸짓, 눈빛, 말투, 손 끝 하나하나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의 일 처리 방식은 많이 달랐다.

한 사람은 내가 요구하지 않아도 필요한 그 이상을 배려해 준 반면, 한 사람은 지극히 본인 위주의 편의성에서 일을 처리했다. 당연히 내가 체감하는 온도 차이는 상당히 컸다. 다행히 큰 어려움 없이 잘 처리를 하고 관공서를 나오면서 과거의 나를 떠올렸다.







예전의 나는 어떤 온도를 나누었을까? 업무 특성상 일반 개인이 아니라 늘 대면하는 대리인들을 상대하기는 했지만 그들도 내게서 분명 온도를 느꼈을 것이다. 사람의 입장은 동전의 양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으니 늘 한 입장만 될 수는 없다. 언젠가는 돌고 돌아 그 반대편에 설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는 가끔 그 점을 간과하고 지낸다. 또한 반대의 입장에 처했을 때조차도 예전의 나를 기억하지 못하고 새로운 입장에서만 주장하다 보면 상대방과의 간극을 좁히지 못한다. 항상 그만큼의 거리와 이질감을 부담해야 할 것이다.







막상 자리를 바꾸어 겪어보고 나니 무심코 하는 나의 말투, 행동 하나하나가 누군가에게 거울처럼 나를 비추는 따뜻한 햇빛 같은 것일 수도, 뾰족한 가시일 수도 있다는 것을 체험하는 계기가 되었다. 내 자리에서 상대방 입장이 되어 보는 것,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 줄 수 있는 것이야 말로 인간관계의 가장 큰 덕목이 아닐까?

오늘의 이 경험을 오래오래 기억하며 좀 더 탄탄한 나를 등기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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