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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해밀 Jul 04. 2024

소창 행주





친정 엄마의 소창 행주는 언제나 하얗게 빛이 났다. 오래 써서 날근날근 해져도 그 색이 누레지거나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느 집이나 행주는 원래 다 그런 줄 알았다. 세월이 좋아지고 온갖 기능성 행주가 나오면서 나는 소창 행주를 까맣게 잊고 살았다. 

그러다가 몇 년 전, 갑자기 소창 행주에 꽂혔다. 시장에 가서 천을 떠다가 바느질을 해서 행주를 만들었다. 소재가 얇아서 이리저리 밀리다 보니 재봉질 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어쨌든 소창 행주를 잔뜩 만들어서 나도 옛날의 친정 엄마처럼 뽀얗게 써야지 하고 마음먹었다. 





© worsham, 출처 Unsplash




그러나 물기가 쉽게 닦이고 때도 잘 빠지는 기존 행주보다 관리하는 것이 까다로웠다. 색이 하얗다 보니 얼룩이 쉽게 드러나 보이고, 가볍게 씻어도 잘 지워지지 않았다. 얼룩빼기에 좋다는 3종 세제를 동원하고 삶아도 친정 엄마의 것처럼 되지 않았다. 다 지워지지 않은 얼룩은 눈엣가시였고 매번 삶아야 하는 것도 번거로워서 다시 싱크대 서랍에 넣어두었다. 

큰 언니 집에 들를 일이 있어 가보면 언니의 행주도 엄마 것처럼 언제나 눈보다 더 뽀얀 색을 하고 있었다. 서랍에 처박혀 있는 우리 집 행주가 떠올라서 물어보았다. 

"언니는 행주를 어떻게 관리하길래 이렇게 하얘? 락스 써?"
"락스를 쓰면 금방 해져서 안돼. 뭐 특별한 게 있나? 비누 칠 해서 삶을 때 비누 동강이 있으면 작은 것 하나 넣고 하면 되지"





           © ethanbodnar, 출처 Unsplash




언니는 별거 아니라는 듯 얘기했다. 뾰족한 수도 아닌데 눈이 부실 정도로 하얀 행주가 신기했다. 요즘은 워낙 세탁 세제가 잘 나오니 빨랫비누가 자연스레 뒷방 차지였는데, 빨랫비누 하나로 저렇게 뽀얀 행주를 만들 수 있다는 것에 반신반의했다. 

집에 오자마자 넣어둔 행주를 죄다 꺼내서 언니가 얘기한 대로 비누 칠을 하고 비누 동강을 넣어서 삶았다. 과연 잘 지워지지 않았던 얼룩이 없어질까? 하고 마음을 졸이며 헹구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작은 얼룩이 몇 군데 남아 있어 그것만 골라 다시 삶았다. 





© justinecz, 출처 Unsplash




그랬더니 내 것도 친정 엄마 것처럼, 큰 언니 행주처럼 하얗게 변했다. 유명한 명성을 떨치는 천연 세제 3종 세트와 때로는 락스의 강력한 힘을 빌려도 잘되지 않던 것이 구석에 밀쳐 두었던 빨랫비누 하나로 모든 것이 한 방에 해결되었다. 

좋은 것, 좋은 것, 더 좋은 것만 찾다 보니 가장 기본인 것을 놓치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덤덤하게 생기고 때로는 촌스럽기까지 한 색깔의 빨랫비누가 그동안 구석에 밀쳐져 있으면서도 제 본연의 기능은 고스란히 품고 있었다. 빨랫줄에 널어 놓은 행주가 바람에 하얗게 하얗게 흔들릴 때마다 가장 중요한 기본을 잊지 말라고 일러주는 것 같다. 아무리 볼 품 없는 것이라도 업신여기지 말라고 얘기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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