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란 해밀 Aug 02. 2024

불발로 끝난 자식 거래




백수가 된 이후로 근처에 살고 있는 친정 언니들과 어울리는 기회가 자주 생겼다. 가까이 살고 있으면서도 퇴직하기 전에는 쉽게 짬을 내지 못했다. 이사할 때도 점차 다가오고 마침 둘째 언니가 쉬는 날이라 큰 언니와 셋이서 이사 갈 집도 구경할 겸 바람을 쐬러 가기로 했다. 

오랜만에 나서는 세 자매의 나들이라 언니들은 뒷좌석에 앉아 연신 소소한 이야깃거리를 이어 갔다. 얼마나 달렸을까? 둘째 언니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 dogbear869, 출처 Unsplash




"어머, 아침에 나올 때 이모랑 나들이 간다고 하니까 우리 딸이 같이 먹으라며 스타 벅스 커피랑 케잌 쿠폰을 보냈네?"
"오! 그래?"
"근데 큰 이모 가는 걸 얘기 안 해서 두 잔만 보냈네"
"그럼 안 되지. 다시 하나 더 보내라고 해"
"알았어"

잠시 후에 조카는 커피와 케잌 쿠폰을 하나 더 보냈다. 전혀 생각하지 못한 선물에 다들 들떠서 입이 마르도록 조카를 칭찬했다. 





© nate_dumlao, 출처 Unsplash




두 언니들보다 내가 더 진심이었다. 언니들은 딸이 있는 반면 아들만 둘인 나는 한평생 느껴보지 못한 자식의 세심함이기 때문이다. 37년 긴 직장 생활을 마무리하고 왔을 때도 "어머니,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라는 문자가 전부였던 아들 녀석들에 반해, 조카는 퇴직하는 날 아침에 감동의 선물을 보내 주었다. 

"이모, 그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이젠 퇴직하고 꽃길만 걸으세요. 그리고 보낸 파일 확인해 보세요"

하며 오디오 파일을 보내왔다. 이게 뭔가? 하고 열어보았더니 김미숙이 진행하는 KBS 클래식 FM에 사연을 보내어 예쁜 마음과 음악을 건네주었다. 




때마침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아침에 조카가 보내준 사연과 음악을 들으며 마무리 책상 정리를 하다 말고 혼자 울컥했다. 지금도 가끔 그 파일을 열어 볼 때마다 그날의 감정이 참을 수 없는 기침처럼 쿨럭쿨럭 되살아난다. 





© polarmermaid, 출처 Unsplash





갑자기 무심한 두 아들이 생각나면서 괜히 부아가 치밀었다. 

"언니는 좋겠네? 그런 딸을 두어서. 집에 있는 우리 아들하고 바꾸면 안 될까?"
"그게 내 맘대로 되나? 딸한테 물어봐야지"
"물어봐 봐. 집도 가까운데 마음만 먹으면 후딱 바꾸면 되잖아. 우리 아들은 내가 집에 가서 물어보면 되고"
"알았어. 물어볼게"

얼마 지나지 않아 조카한테서 답이 왔다.

'어휴~~~! 어쩌다가 가뭄에 콩 나듯 하는 친절에 이모가 속는 건데. 이모가 나에 대한 진실을 잘 몰라서 그래'

"우리 딸한테서 이렇게 답이 왔는데?"
"우리 집에는 그 가뭄에 콩도 안 난다고 그래라"
"푸하하하~~~"





© 12tones, 출처 Unsplash




저녁에 집으로 돌아와 책상 앞에 앉은 아들에게 오늘 있었던 상황과 내가 왜 자식을 바꾸고 싶어 하는지 설명하고는 넌지시 의향을 물어보았다. 


"네 생각은 어때? 누나는 뜻이 아주 없는 건 아니던데, 너는 누나랑 바꿀 생각 없어?
"저는 그냥 여기서 살 건데요"
"그래서 안 갈 거야?"
"네"
"왜?"
"하하하! 여기서 사는 게 더 좋으니까요"


그렇게 자식 거래는 불발이 되고 말았다. 그저 뻑뻑한 병뚜껑 열 때나 아들을 써먹으며 살아야겠다. 한 달 뒤에 이사 가고 나면 그조차도 내가 해야 되니 같이 있는 동안 이 병, 저 병 뚜껑은 다 따내라고 해야겠다. 그것도 그리울지 모르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소창 행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