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쯤, 친구가 찜질방에서 만나길 제안했다. 만날 때마다 몇 시간씩 걷는 걸 즐겼는데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서 찜질방에서 보는 게 어떻겠냐는 것이다. 추위를 엄청 타기도 하고, 찜질방을 가 본 지 20년도 더 된 것 같아 그러기로 했다.
사실 나는 찜질방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은 땀으로 온통 옷을 적시기도 하는데, 아무리 버티고 있어도 백 원짜리 동전만큼도 적시지 못한다. 흘리는 땀의 양이 반드시 효과의 척도는 아니겠지만 별 변화가 없으니 썩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그런데다 조금만 있어도 금방 지쳐서 내키지는 않았지만 추운 날씨 때문에 별도리가 없었다.
달포 가까이 소화 불량으로 고생하고 있던 터라 괜찮을까 걱정하며 친구 따라 몇십 년 만에 찜질방에 가보았다. 뜨거운 참숯이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불을 가운데 두고 빙 둘러앉은 많은 사람들에게 놀랐고, 오전 11시쯤 된 시각임에도 이미 방마다 가득 찬 사람들로 또 놀랐다.
불편한 속을 끌어안고 마음 졸이며 한 귀퉁이에 앉아 있었다. 여차하면 달려 나갈 생각으로 긴장하고 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신기하게도 속이 점점 편안해졌다. 숯 때문인지, 따뜻한 기운 때문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날은 점심을 먹고도 속이 불편하지 않아 오랜만에 좀 살 것 같았다.
찜질을 마치고 샤워를 했다. 옷을 입고 머리를 말리고 있는데 난데없이 80대 초반으로 보이는 영감님이 여자 탈의실 문을 열었다. 순간, 이 상황이 꿈인지 현실인지 선뜻 판단이 되지 않았다. 내 옆으로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여자 손님 둘이 거울 앞에서 머리를 말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친구와 나는 "어? 어? ......" 하며 서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며 어쩔 줄 몰라했는데, 그는 그의 아내와 문 앞에서 얘길 나누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돌아서 나갔다. 그제야 제정신이 돌아온 친구는 그러면 되느냐고 그의 아내에게 얘길 하자, 그제야 그녀도 남편의 실수를 알아차리는 것 같았다.
그가 돌아가고 나서 한동안 탈의실은 떠들썩했다. 나는 머리를 계속 말리며 어쩌면 나도 저럴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반짝거렸던 한창때에 비해 점점 둔감해지고, 느려지며, 무덤덤해져 간다. 그것을 포용이나 수용으로 포장할 수도 있고, 실제 그럴 수도 있겠지만, 모든 면에서 사그라지는 모닥불의 불씨 같은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 영감님도 젊은 나이라면 결코 "여탕"이라고 커다랗게 써져 있는 팻말을 보지 못하는 실수를 하지 않았을 것이며, 아내에게 용건이 있다고 여자 탈의실 문을 벌컥 여는 중대한 실수를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이가 빼앗아간 그의 영민함은 어디쯤에 걸쳐 놓았을까? 한정된 양이라서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따라 늙은 이의 것을 뺏어 젊은이들에게 주려고 그랬을까?
"저 아저씨, 아무것도 못 봤어. 자기가 여탕 문을 열었다는 것조차도 모르는 얼굴이야. 그렇게 흥분하지 않아도 돼"
여전히 방방 뛰는 친구에게 말했다. 눈앞에 보고도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내가 무엇을 했는지조차도 판단하지 못하게 하는 저 "'늙음'이라는 것이 참 야속하고 서럽다. 어쩌면 내 모습일지도 모르는 그를 보며 아직까지는 괜찮은 나의 오늘에 붉은 출석 도장을 꾹 찍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