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갈 용기

by 파란 해밀




수영장 옆에 노인 복지관이 있다. 몇 달 동안 수영장을 다니면서 그 앞을 그냥 지나치기만 했다. 간판에서 알 수 있듯이 그저 노인들을 위한 복지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이려니 하고 짐작만 했다. 지나갈 때마다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꽤 많은 사람들이 보였고 그들은 늘 활기차 보였다.


어느 날 집에서 그 복지관을 검색해 보았더니 홈페이지가 있어 찬찬히 훑어볼 수 있었다. 만 60세 이상 거주자는 회원으로 등록이 가능하고, 생각 외로 많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더구나 터무니없이 저렴한 비용은 너무 미안할 정도여서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였다. 추첨제로 이용할 수 있다고 해서 일단 요가를 접수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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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 요가 수업 1, 2를 등록하셨는데 두 가지 중에 하나만 하셔야 돼서 연락드렸어요"


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전화를 받으니 복지관 직원이었다. 태어나서 처음 들어본 어르신이라는 호칭은 한동안 나를 멍하게 만들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머리를 한 대 세게 두들겨 맞은 것 같았다. 젊었을 적, "새댁~~~" 하고 불렸을 때보다 더한 충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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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살아오면서 어딘가에 소속되고, 무언가를 통과하기 위해 늘 용쓰며 살았다. 그래야만 살아낼 수 있었다. 그 결과, 내가 거머쥐었던 성취는 삶의 활력소이기도 했고, 더 나아갈 수 있는 커다란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바퀴처럼 쉼 없이 구르며 살았고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그런데 그저 나이를 먹었다는 이유로 아무런 노력도 없이 저절로 자격이 되는 것이 어색하다. 내 것이 아닌데 잠시 들고 있는 남의 물건 같다. 더구나 덤으로 따라온 어르신이라는 호칭에 몸서리치며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미처 생각지도 못해서 준비를 할 수 없었는데 현실은 주체할 수 없는 속도로 나를 늙은 이를 위한 낯선 곳에 떨어뜨려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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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찾아온 혼동 속에 어르신의 여파가 내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조금씩 정신을 차리면서 오랫동안 고민을 했던 흰머리를 기르기로 했다. 많은 갈등이 있었지만 한 번 해보기로 했다. 하얗게 자라나는 머리카락과 함께 늙어가는 나를 용감하게 맞아들이기로 했다. 염색을 하면 몇 살이야 더 어려 보일 수 있겠지만 본질의 내가 변하는 것은 아니다.


일시적으로 조금 더 나아 보이는 나를 위해 삐져나오는 흰머리를 가리기보다는 이제는 너그럽게 수용해 보기로 했다. 너끈히 잘할 수 있을지 자신은 없지만, 자라는 흰머리만큼 내 마음도 같이 자라기를 바라며 그것을 붙잡고서라도 늙는 것에 용기를 내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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