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매한 영화를 보러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조금 여유 있게 나왔더니 버스 도착 예정 시각이 한참 남았다. 정류장에 앉아 핸드폰 알림 내역을 확인했다. 누군가 내가 쓴 글에 "좋아요"를 표시했다는 내용이었다. 무슨 글인가 궁금해서 나도 따라 들어가 읽어보았다.
내가 써놓고도 오래되어 까맣게 잊고 있었던 글이다. 살면서 문득, 문득 떨림이 있을 때마다 그 느낌을 놓치지 않으려고 글을 적는데 그날도 그랬던 모양이다. 한 줄, 두 줄 읽어 내려가다 보니 바싹 마른 언덕배기 구석에서 숨 죽이며 피어난 봄쑥처럼 기억이 파랗게 살아난다.
'그랬구나......'
'이때는 이랬구나......'
'마음이 그랬겠다......'
'제법이네......'
읽고 나서 내가 나를 기특하게 여겼다. 글을 통해 1년 전, 2년 전, 그보다 더 오래된 나를 만날 수 있었다. 그때의 나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으며, 지금의 나는 그것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볼지 생각해 본다. 시간은 많이 흘렀지만 역시 같은 결론을 내리지 않았을까 싶다.
나이를 많이 먹거나 늙는다고 해서 성장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고 보니 글은 성장 일기 같은 것이기도 하다. 그 나이대의 생각과 믿음으로 토해낸 누에의 명주실처럼 씨줄과 날줄로 엮어 만든 옷이 글이기도 하다. 한 땀, 한 땀의 정성이 이름난 장인에게만 허락된 것은 아니며 장인의 것만 반드시 소중한 것도 아니다.
장난처럼 끄적거려 놓은 누군가의 낙서 한 줄도 그때는 온 마음을 쏟아 놓았을 것이다. 지나고 나면 그 또한 "나"였던 것이다.
책꽂이 한편에 꽂혀 있는 두 아들 녀석의 초등학교 때 일기를 읽다보면 까마득한 그때를 회상하게 되는 것처럼, 내가 쓴 글은 지금의 나보다 조금 더 젊었거나 많이 어렸던 때를 돌아보게 한다.
그때의 일이 치졸하게 여겨지면 그만큼 더 성숙해졌다는 것이며, 그때의 일로 마음이 일렁이지 않으면 그만큼 더 강해졌거나 담대해졌다는 반증일 것이다.
어쭙잖은 나의 글에 누군가 눌러준 "좋아요"라는 꼬리표를 타고 순식간에 몇 년 전으로 돌아가 나를 만나고 왔다.
제 바람에 못이겨 새파랗게 멍을 들였던 나는 멀건 보라색 풀대죽처럼 풀어지고 있었다. 잠시 머물렀던 글 그림자에 옷깃을 슬쩍 물들이고 왔다.
훗날 언젠가 이 글을 다시 읽을 때면 고운 보라색 명주실 한 타래쯤 꿰차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