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일이 있어 다니러 갔다가 짬을 내어 즐겨 가던 극장을 찾았다. 일본 영화 "걸어도 걸어도"를 보았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잔잔하게 끌어갔다. 겉으로는 자칫 지루하게 여겨질 수도 있지만, 안으로는 뜨거운 분노와 미움, 갈등이 구석구석 흐르고 있다.
물에서 다른 사람을 구하려다 뜻하지 않은 사고로 큰아들을 잃은 지 10년이 되었다. 그 아들의 기일에 모처럼 둘째 아들과 딸 내외가 부모의 집을 찾아온다. 의사였던 아버지는 이제 일에서 손을 놓았지만 자식 중에 대를 이어 의사가 될 사람이 없는 것이 여전히 못마땅하다.
더욱이 전 남편과 사별하고 애가 있는 여자와 결혼한 둘째 아들은 눈엣가시처럼 탐탁지가 않다. 아들을 데리고 재혼을 한 며느리는 사소한 것에도 감정의 외줄을 타고, 부모와 합가를 해서 경제적인 부담을 줄여 보려는 딸과 사위의 계산된 술수도 자식과 거리 두기를 하려는 부모와 줄타기를 한다. 그리고 10년 동안 아무도 몰랐던 큰아들의 죽음에 대한 어머니의 복수도 비로소 그날 확인하게 된다.
작은 마을에서 소박하게 살아가고 있는 그들은 멀리서 바라보는 바다처럼 고요해 보인다. 너무 잔잔해서 마치 파란색을 칠해 놓은 그림처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데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파도가 끊임없이 바다를 흔들어 댄다.
때로는 겨우 모래밭이나 간지럽히고 말 것 같지만 때로는 휘몰아치는 격랑으로 바다를 뒤흔든다. 산들바람처럼 일렁이기도 하지만, 언제 터질지 아무도 모르는 시퍼런 울혈을 삼킨 채 침잠해 있기도 한다. 그들이 만들어 놓은 가족이라는 관계에서 아무 일도 없는 듯 사는 것처럼 보여도 제각각 그들의 문제와 갈등을 비비며 살아간다.
그러다 어느새 부모는 수평선 너머 밀려나는 파도처럼 그동안 머물렀던 바다를 떠나고 그 자리에 자식이 들어선다. 부모와 똑같은 모습으로, 그들의 마음이 되어 내 자식을 바라본다. 그들도 언젠가는 내 부모가 떠난 것처럼 자리를 비우고 간다. 원래부터 누구의 자리는 없었던 것처럼...... 단지, 잠시 빌려서 머물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절대로 놓지 않을 듯 힘주어 서로의 깍지를 끼기도 하고, 다시는 안 볼 듯 등을 돌리기도 하지만 영화는 가족이 무엇인지 제3자의 시선으로 이만큼 떨어져서 바라보게 한다. 다닥다닥 붙어서 어깨를 부딪히며 살아야 가족인 것 같아도, 멀리 보이는 바다처럼 일렁이게 내버려 두어야 하는 것도 가족인 것 같다.
이제는 산등성이에서 내려다보는 먼바다처럼 가족을 바라보아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가족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작은 파도가 자꾸 일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