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반 스케치를 한 지 거의 3년이 되어간다. 수채화를 처음 접하면서 느꼈던 암담함은 아직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오랫동안 유화를 한 탓에 자꾸 덧칠을 해서 원하는 대로 표현이 되지 않아 붓을 분질러 버리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수채화는 도저히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생각도 했다.
그래도 어쨌든 조금만 더 해보겠다고 날밤을 새면서 그림에 매달렸다. 그때 고장 난 어깨는 아직까지도 고질병이 되어 여전히 나를 괴롭히지만, 그때와 지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래도 물 한 방울 정도는 데리고 논다는 것이다. 수채화는 물과 물감의 미세한 농도를 가지고 춤을 추듯 놀아야 하는데 겨우 이만큼 알기까지도 많은 인내와 끈기가 필요했다.
그렇다고 아주 자유자재로 잘 그리는 것도 아니다. 참고, 견디고, 노력하다 보니 그래도 조금 더 해보라는 당근 같은 선물이 주어지는 것 같다. 물 한 방울을 데려다 놓고 원하는 곳에, 원하는 농도로 색을 입혀 나간다. 어쩌다 재수 좋은 날은 잘 표현이 되지만, 여차하면 더 번지기도 하고, 원하는 농도에 미치지 못할 때도 있다.
세상사 내 마음, 내 뜻대로 되는 게 하나 없다고 하지만 물 한 방울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이내 흔적도 없이 마르고 말 물 한 방울도 내 맘대로 되지 않는데, 그동안 나는 어쩌면 파도의 방향도 바꾸어 보려고 했던 건 아니었는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젊은 날 일찍 수채화를 배웠더라면...... 지금 느끼고 있는 이것을 그때도 알 수 있었을까? 진작 물 같은 마음을 가질 수 있었을까? 이 나이가 되고서야 겨우 물 한 방울의 무게를 깨닫는다. 사는 동안 한 방울의 물보다 더 크고, 무거운 존재들이 얼마나 많은데 나는 그것들에게 전혀 겸손하지 못했다.
물 한 방울의 의미를 진작 알았더라면 나도 물처럼 풀어놓을 줄도 알고, 물처럼 흐르기도 했을까? 그러고 보니 그동안 그림만 그린 줄 알았는데, 그림을 알고 나니 결국 그 안에 삶이 있고 내가 있는 것을 알았다.
연못을 들여다보면 물속에 내 모습이 비치듯, 조금씩 투명해지는 그림 안에 내가 보인다. 작년보다 더 늙었지만, 그때보다 조금 더 자란 내가 있다. 그때는 알지 못한 것을 느끼며 조금 더 어른이 되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