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영어 회화 모임에 가기 위해 차를 타고 집을 나섰다. 버릇처럼 라디오를 틀었다. 그 시간대에 나오는 노래가 무척 정겹다. 자꾸 예전의 나를 떠올리게 하는 시간이다. 20분 남짓 걸리는 동안 나는 퇴직하기 전의 나로 돌아간다. 차 안에서 들었던 음악은 아침에는 잘 다녀오라는 격려였고 저녁에는 수고했다는 다독임이었다.
직장 생활 37년을 하기 까기 어찌 늘 좋은 날만 있었을까? 이 길이 맞나? 하는 회의가 들 때도 있었고, 적지 않은 성취감을 느낄 때도 있었다. 그러다가 월급이 마약이라 타협하고 적당한 선을 유지하며 안정적으로 다닐 때도 있었지만 퇴직에 임박해서는 달콤한(?) 백수가 되기를 얼마나 간절하게 기다렸는지 모른다.
그래서 퇴직하면 절대로 회사 쪽으로는 쳐다보지도 않을 거라 작심했다. 이미 모든 걸 다 태워서 미련도 없었고, 바로 그다음 날부터 닥치는 새로운 생활에 오롯이 집중하고 싶어서이기도 했다. 그랬던 내가 음악 탓이었을까? 그때 했던 버릇 때문일까? 음악을 들으며 모임 장소로 가는 동안 차 안을 가득 채우는 일렁임에 나는 끝내 눈물을 쏟고 말았다.
이른 아침, 아직 다 깨어나지 않은 세상의 도로 위를 달리며 느꼈던 그 짜릿한 출발을 음악과 함께 했고, 야간 근무를 마치고 지친 몸을 차에 실으면 그보다 더 달콤할 수 없는 속삭임 같은 노래를 들으며 나는 어느새 그 안으로 녹아들었다.
지나고 보니 그 순간들이 내게는 뙤약볕 아래 무심하게 그늘을 내어 주는 아름드리나무였고, 추운 날, 창으로 들어와 어깨를 만져 주고 간 햇살 같은 존재였다. 그를 통해 위로받고 견디며 충전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퇴직하고 나면 내가 다닌 회사의 뉴스에는 관심도 안 가질 거라 했지만, 뉴스가 나오면 가장 먼저 신경이 쓰이고, 죽어라 싫어했던 출근이 문득 그리워지는 것도 그 안에 남겨 놓은 소소한 추억 때문일까? 오래되니 힘들었던 것도 조금씩 그리워진다. 마치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