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부터 염색을 하지 않았으니 벌써 6개월이 지났다. 직장을 다니는 동안은 어쩔 수없이 불편을 감수하면서 염색을 해야 했지만, 퇴직을 하고 나서는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염색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본격적으로 흰머리를 기르려고 결정하기까지 의외로 많은 마음의 준비와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막상 현실에 닥치고 나서야 알았다. 참 별게 다 용기를 필요로 한다 싶었다.
고작 머리카락 색깔 정도 변하는 건데 뭐가 그렇게 대수일까 싶었지만 나날이 하얗게 올라오는 범위가 넓어질수록 생경하게 느껴졌다. 아침, 저녁 거울에서 보던 익숙한 내 모습이 아니라 갑자기 훅 늙어 보이는 모습에 몇 번이나 결심을 엎을까도 했지만, 또다시 염색을 되풀이할 생각을 하면 자신이 없어 억지로 마음을 돌려먹었다.
그렇게 수시로 마음을 엎었다가 뒤집었다가 하는 동안 까맣던 머리카락은 한 달마다 움쑥움쑥 잘려나갔다. 더 이상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흰머리가 많이 자라 나온 후부터는 염색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흰머리를 선택한 쪽으로 분명하게 가닥을 잡았다.
지금은 완전하게 자리를 잡았고, 매일 보는 거울 속의 내 모습에도 익숙해졌다. 나름 백발에서 오는 멋스러움도 점점 묻어난다.
"아유! 흰머리를 참 멋지게 기르셨네요" 길을 가다가 뒤에서 오던 생면부지인 사람이 이렇게 말을 건네는가 하면, "아휴! 누가 너를 60이 넘은 줄 알겠어?" 하며 나를 볼 때마다 입버릇처럼 말하던 큰 언니는 언제나 어리고 젊은 줄로만 알았는데, 어느새 흰머리가 되어 나타나는 막냇동생을 아직도 적응을 못해서 어색해한다.
그러나 나는 정작 지금 누리는 이 자유로움이 너무 좋다. 슬쩍 스쳐 지나는 바람에도 혹시나 하얀 머리카락을 들추지는 않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염색을 할 때마다 마른 빗자루처럼 점점 더 부스스해지는 머리카락을 보며 젊은 날 그토록 반짝거렸던 머릿결을 더 이상 그리워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고 보니 흰머리를 기르는 것도 염색을 하지 않는다는 단순한 사실의 변화가 아니라, 현재의 나를 잘 받아들이는 과정 중의 하나인 것 같다. 이럴까 저럴까 하는 두려움과 조바심 끝에 처음으로 내디딘 결정으로 나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낯선 곳을 여행하는 것처럼 새로운 길을 알아간다.
하나를 인정하고 내려놓으니 그동안 몰랐던 세상을 경험한다. 비록 작은 도전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내 나이를 그대로 인정하고, 현실을 받아들이고 포용하려는 커다란 용기였던 것이다.
이 나이에 무슨 도전이나 용기가 필요할까 싶었는데 삶은 아직도 꽁꽁 숨겨둔 꿍꿍이가 있는가 보다. 나는 아직도 더 단련되어야 할 나이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