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가량 부산에 머물렀다. 정기 건강 검진도 해야 하고, 차량 검사도 할 겸 넉넉하게 여유를 가지고 갔다. 꽤 시간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친구를 만나고, 친정 언니들과 어울리다 보니 집 안에서 가만히 있을 짬이 없었다. 짜인 시간표 대로 바쁘게 돌아치다 보면 어느새 파김치가 되어 돌아오곤 했다.
집 안에서 조용히 쉬려는데 위층에서 계속 드르륵드르륵 의자 끄는 소리가 났다. 무심코 식탁 의자를 끄집어내다가 그랬나 하고 생각했는데, 그 소리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끊이지 않고 계속 들렸다. 어쩌다 하는 실수가 아니라 아무 생각 없이 의자를 끄는 것 같았다. 3일 내내 그 소리를 듣다가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어느 날 외출에서 돌아오자마자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 집에는 모녀가 살고 있는데 분양 당시 같이 입주한 세대라 서로 알고 지낸 지는 오래되었지만 가까이하지는 않았다. 매사에 부정적이고, 이웃들과 말다툼이 잦은 데다가 연장자라는 이유로 젊은 사람들에게 군림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어 일정 거리를 두고 가급적이면 대면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더 이상 그 소음을 견딜 수가 없었다.
초인종을 누르자 딸이 문을 열어주었다. 딸은 나이 50을 훌쩍 넘겼지만 정신적인 문제가 있어 독립적으로 일상생활을 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그런 딸 뒤로 어머니가 나왔다. 한때는 골목대장(?)처럼 온 동네를 누비던 팔팔한 기세는 어디 가고 맥없이 나와 물었다.
"무슨 일이세요?"
"외출하고 돌아온 지 30분 정도 되었는데 계속 의자 끄는 소리가 나서 어떤 상황인지 확인 좀 하려고 올라왔어요"
"식탁을 안 쓰다가 내가 다리가 아파서 식탁을 산 지 얼마 안 됐는 그래서 나는가?"
"의자 다리에 커버 같은 것 씌우지 않으셨어요?"
"그런 것 안 했는데요"
"..........? 다이소에 가시면 종류별로 다양한 커버가 있으니까 사다가 씌우세요. 밑에서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요"
"아이고! 죄송합니다"
"제가 들어가서 어떤 의자인지 좀 봐도 될까요?"
"네"
의자 다리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알몸(?)이었다. 커버가 없으면 살짝 들어서라도 옮겨야겠다는 생각도 하지 못하고 모녀는 그들이 필요할 때마다 마음 놓고 마룻바닥을 벅벅 긁으며 의자를 넣었다, 뺐다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주방에는 온통 집기류들이 가득 차서 빈틈이 없고, 식탁과 의자 위에는 갖은 약통들이 즐비하게 놓여 있었다. 입주 초반, 반상회 때문에 들렀을 때는 집안이 상당히 깔끔하게 잘 정돈되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늙으면서 몸이 불편하고 귀찮으니 모든 걸 꺼내놓은 채 손에 잡히는 대로 쓰고 있는 것 같았다.
더구나 다 큰 딸이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는 상황이다 보니 아픈 몸으로 삼시 세끼 해결하는 것도 그녀에게는 큰 부담일 것이다. 올라올 때까지만 해도 열이 뻗쳤는데 어수선한 주방과 식탁을 보면서 마음이 괜히 심란해졌다. 가게에서 커버를 사서 씌울 것을 얘기했지만 무릎이 아파서 잘 걷지도 못하는 어머니와, 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딸만 있는 집에서 아무도 선뜻 나서서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병원 검진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다이소에 들러 의자 커버와 케이블 타이를 사서 위층으로 올라갔다. 빼곡하게 널브러져 있는 짐을 비집고 들어가 의자 다리에 커버를 씌우고 밀리지 않도록 케이블 타이로 묶어 고정시켰다. 커버를 다 씌운 의자를 그녀가 이리저리 밀어 보았다. 천둥 번개 소리 같던 그 지긋지긋한 소리가 더 이상 나지 않았다. 의자 네 개에 커버를 씌우고 케이블 타이를 여유분으로 남겨 놓았다.
"얼마를 드려야 하나요?"
"괜찮습니다."
"아유, 그래도 이렇게 해 준 것만 해도 고마운데 돈을 드려야지요"
"안 주셔도 돼요. 얼마 안 해요"
단 한 마디도 지지 않고 본인의 뜻만 줄곧 주장하던 왕년의 혈기 왕성(?) 했던 사람은 더 이상 없었다. 동네에서 싸움닭(?)이라 불릴 만큼 다혈질이었던 그녀의 열기는 휴화산처럼 잠시 숨을 돌리는 건지 아예 다 식은 건지 분간할 수 없지만, 계단을 내려오면서 내 기분도 자꾸 까부라졌다.
사람을 멍하게 만드는 독한 감기약처럼 세월이 사람을 속절없이 무기력하게 만들어 놓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음은 잦아들어서 조용한데 그 틈바구니에 공허함이 무겁게 가라앉는다. 그 위에 나도 슬며시 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