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바뀐 학부모

by 파란 해밀



문화센터 어반 스케치 수업이 있는 날은 주로 버스를 이용한다. 버스 한 대 차이인데 조금 일찍 출발하면 수업 시간보다 30분 일찍 도착한다. 다음 버스를 타도 수업에 지장은 없지만, 일찍 도착해서 혼자 그림을 그리는 조용한 분위기가 좋아서 늘 그 시간대에 버스를 탄다.


그날도 일찍 도착해서 혼자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수업 시간까지 20여 분이 남았는데 출입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서 쳐다보았더니, 언제나 열심히 그림을 그리는 노 할머니 회원이 아들과 함께 들어왔다.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 지 1년이 되어가는데 수업도 거의 빠지는 일 없이 참석하는 회원으로 반에서 가장 연장자였다.





84세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열성이 대단하다. 지팡이를 짚고 불편한 걸음을 하면서도 젊은 사람들의 열의쯤은 아무것도 아닌 걸로 만든다. 매주 새로운 그림을 그려 가는 것이 나도 쉬운 일이 아닌데, 꼬박꼬박 다른 그림을 거의 완성해서 오는 노 할머니의 열정은 언제나 한결같아서 나도 가끔 자극을 받을 때가 있다.


어쩌다 오는 길에 백화점 옆에서 누가 데려다주는 차량에서 내리는 것을 몇 번 본 적은 있었는데, 직접 교실까지 부축을 받아서 오기는 처음이었다. 노 할머니가 자리에 앉는 것을 보고 아들은 나와 눈을 마주치자 인사를 하고는 교실을 떠났다.


"어디 편찮으세요?"

"내가 디스크 수술을 해서 걷는 게 불편해서 그래요"

"그러면 앉아서 그림 그리시는 것도 좋지 않을 텐데요?"

"근데 앉아서 하는 건 괜찮아요. 걷는 게 불편해서 그렇지"





마침 아들이 노모를 모셔다 드리고 출근을 해도 되는 상황이라 매번 수업이 있는 날은 백화점에 들렀다가 간다고 한다. 아들이 교실을 떠나고 나서도 한동안 그의 방문이 내 속을 휘저어 놓았다. 어디선가 많이 본 낯익은 풍경 같은데 한편으로는 영 낯이 설고 어색하다.


저 자리에 내가 있었고, 저 위치에 노 할머니가 있었을 텐데, 어느새 세월이 그것을 뒤집어 놓았다. 겨우 허리춤에나 오던 녀석들 때문에 가끔 학교에 갔던 기억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남아 있는데, 내 키보다 더 자란 아들이 이젠 학부모가 되어 노모를 교실에 앉혀 놓고 간다.





'이래도 되나? 이건 아직 아니지 않나? 벌써 이래야 하나?'

'착한 아들의 대접이라고 순순히 받아들여야 하나?'


온갖 항명과 저항이 속에서 들끓어 올랐다. 세차게 달리는 차창 밖으로 스치는 삶의 짧은 풍경에서도 무언가 내 것으로 느끼고 깨달을 여유가 있었는데, 이제는 그럴 틈도 없이 스치고 지나간다. 아무런 토 달지 말고 닥치는 대로 받아들이라고 하는 협박 같다.





노 할머니의 상황이 아직은 내 것이 아니지만 머지않아 나도 저 자리에 있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할 학부모가 생길 것이다. 나를 입양해 준 부모에게 충심(?)을 다해 적응해야 하는 암된 고아처럼 그 이질적인 환경에 이 앙다물고 순응해야 할 날이 오지 않을까?


붓이 지나간 자리마다 물을 따라 물감이 어지럽게 번져간다. 영락없이 초점을 잃은 내 마음 같다. 생각이 분분한 건지, 극렬한 저항인지....... 그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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