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빙긋 웃게 된다. 앙금이 가라앉으며 차츰 물이 맑아지듯 보는 사람의 마음이 그렇게 된다. 그들의 천진난만한 표현이 어른들의 머리에 섞인 희뿌연 먼지를 걷어내어 준다. 그래서 언제부터인지 아이들의 낙서 같은 그림이 참 좋다.
요 근래 한동안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 무겁게 누르는 생각이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게 했다. 그동안 이런저런 그림들을 접한 지 오래되었지만 그럴 때마다 제대로 표현이 되지 않아 고민했을 뿐, 그림 자체에 대한 회의는 없었는데 이번에는 다른 때와 많이 달랐다.
가고자 하는 길은 분명한데 어쭙잖게 알고 있는 기존의 의식이 자꾸 장애가 되어 가로막는다. '그렇게 하면 안 돼', '그거는 잘 못된 거야', '이건 이렇게 해야지'...... 익히 알고 있는 이론이나 틀이 번번이 나를 붙잡는다. 이미 길들여진 생각과 버릇은 선뜻 새로운 것을 시도하지 못하게 한다.
아는 것이 커다란 장벽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무겁게 했다. 설익은 지식이나 이론에 훈련되지 않았다면 나도 어쩌면 아이들처럼 마음 가는 대로 표현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제 겨우 여섯 살인 둘째 언니 손자가 그려서 보내준 생일 카드의 그림을 보고 오랫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거기에는 어디에도 망설이는 부끄러움이나 주춤거리는 비겁함도 없었다.
그동안 나는 설핏 아는 지식 그 언저리에서 이도 저도 아닌 어중 잡이가 되어 흉내만 내고 있었던 것 같다. 여섯 살 사내아이보다 못한 용기에 가슴앓이만 하다가 내가 그어 놓은 선을 물지 않으려고 조심조심한다.
안다는 것의 장애가 비단 그림에만 해당이 될까마는, 아는 것과 모르는 것 그 사이 어디쯤에서 갓 입사한 초년생처럼 새삼 쭈뼛쭈뼛해하고 있다. "아는 것이 과연 힘인가?"라는 물음이 이 나이에 이토록 풀기 어려운 질문일 줄 몰랐다. 늙어가면서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 같아 좋아했는데, 그렇다고 그것이 반드시 아이처럼 되는 것은 아닌 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