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 직업 "어머니"

by 파란 해밀



최근 아들은 9년 동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멀리 보았을 때 비전도 없고, 어중간하게 그만 둘 바에는 차라리 일찍 결단을 내리는 게 좋을 것 같다는 것이 본인 생각이었다. 간간이 직장 분위기를 들었을 때 나도 그 생각에는 어느 정도 공감하지만, 요즘처럼 취업난이 심각한 때에 재취업이 쉽지 않을 때라 적잖은 우려도 있었다. 다행히 다른 회사로 이직이 확정된 후 퇴사를 했다.


그러나 규모 면에서 먼저 다니던 회사와 상당한 차이가 있으니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막상 실제 근무를 해보니 회사 내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거의 없는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관리자와 소통도 전혀 되지 않고, 본인이 처리할 수 있는 권한도 부여되지 않은 채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는 꽉 막힌 실정을 파악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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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이 두 번째 회사를 그만둔 것도 몇 주가 지나서야 알았다.


"일이 많은 것은 해내면 되는데, 문제 해결을 할 수 있는 방안도 주지 않고, 대화도 안 되니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요."

"..........."


눈앞에 닥친 문제는 떡 하니 버티고 있는데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상사와 논의했을 때, 아무런 해결책이 나오지도 않고, 오로지 담당자에게만 미루는 경우를 나도 직장 생활을 하면서 맞닥뜨려본 경험이 있다. 그럴 때는 정말 답이 없다.


현실은 규정에 입각하지 않은 문제들이 많이 발생한다. 그럴 때는 관계자들이 최대한 지혜를 모아 타개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럼에도 도움은 고사하고 오히려 속 터지게 하는 관리자들을 만나면 나도 마음 같아서는못 마시는 술을 말통으로 퍼마시고 싶은 심정이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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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아들이 말하는 상황이 어떤 건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그 암담함이 내게도 전해져 왔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마음 한편으로는 불안했다. 재취업이 잘될 수 있을지.......


그 걱정은 두 달 동안 이어졌다. 처음에는 이직 확정을 하고 퇴사를 했지만 두 번째는 그렇지 않다 보니 퇴사 후 직장을 구해야 했다. 첫 번째 회사보다 연봉 면에서는 많이 떨어지지만 새로운 경험을 쌓기 위해 낮은 연봉을 감수하고서라도 일자리를 구하려 했지만, 규모 있는 첫 회사의 근무 경력이 오히려 장애가 되기도 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걸림돌이었다.


"큰 데서 근무하시다 여기서 근무하실 수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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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통화를 하지만 그럴 때마다 상황을 물어볼 수 없었다. 묻고 싶었지만 나보다 녀석이 더 고민일 테니 그냥 삼켰다. 좋은 소식이 있으면 연락을 했을 텐데, 없는 걸로 봐서는 아직 결정된 게 없으려니 했다. 그러다 오랜만에 물어보았다.


"괜찮아?"

"네. 할 수 없죠. 제가 한 선택이니 제가 책임져야죠"


겉으로는 그렇게 말하지만 속으로는 어떨지 가늠이 갔다. 비록 떨어져 살고 있지만 아들의 느낌 하나, 하나가 내 팔뚝에 돋은 소름처럼 꼿꼿이 서 있었다.


'아니야, 이건 아들 인생이야. 내가 걱정한다고 해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잖아. 그냥 편하게 생각하자. 녀석 말대로 녀석이 선택한 거잖아. 아마 이번 일을 통해서 좀 더 인생의 무게를 알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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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밤이 바뀐 갓난아기가 밤에 잠만 좀 잘 자도, 우유병과 기저귀만 떼어도, 혼자 걷기만 해도, 학교만 다녀도..... 그러던 녀석이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가지면 어미는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다니는 자유인이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어미라는 극한 직업은 그것을 쉽게 용납하지 않았다. 아이가 자라면 자랄수록 그림자처럼 따라오는 걱정도 더 커지는 것 같다. 자식의 몫이라고 뚝 떼어 놓고 생각하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을 때도 있다. 설령 겉으로는 표현하지 않더라도 속으로 애가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애미라서 그렇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지켜보지만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니고,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아니니 말 못 하는 벙어리처럼 냉가슴을 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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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나를 두고 내 어머니도 나와 같은 걱정을 하지 않았을까? 때로는 나의 선택이나 결정이 조마조마하고, 위태위태해 보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한결같이 어머니는 나를 믿고 끝까지 기다려주셨고, 단 한 번도 싫어하거나 화내는 기색 없이 늘 똑같은 자리에서 내게 용기를 북돋워주셨다. 쉽지 않았을 그 한결같음을 어머니는 어찌하셨을꼬? 그에 비해 나의 이 쪼잔한 일렁임이 부끄럽다.


며칠 전, 녀석으로부터 취업이 확정되었다며 연락이 왔다. 긴 안도의 숨을 쉬었다. 마치 나의 합격처럼 반가웠다. 나도 이번에 어미라는 극한 직업의 매운맛을 한 번 더 알았고, 녀석도 삶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또 이렇게 녀석도, 나도 배워간다. 애미라서 푹 삭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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