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마지막 날, 보고 싶은 영화가 있어서 큰마음 먹고 집을 나섰다. 이곳으로 이사 오고 나서는 맘이 가는 영화를 보려면 버스를 타고 1시간가량 나가야 한다. 부산에 살 때는 집을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가까이 극장 두 곳이 있어 구미에 당기는 영화를 보러 가는 것이 부담 없이 즐기는 일상 중의 하나였다.
여기서는 다양한 영화도 상영하지 않고, 극장까지 거리가 멀어서 부산에 갈 때마다 허겁지겁 밥을 먹는 허기진 사람처럼 한꺼번에 영화를 몇 편씩 몰아서 보곤 했다. 며칠 전부터 예매를 해놓고도 막상 당일 아침에는 갈까 말까? 하고 슬쩍 망설여졌다.
출발해야 하는 시각까지 갈등을 하다가 버스가 도착할 즈음이 되어서야 급하게 집을 나섰다. 몇 번 가본 길이라 처음보다는 시간이 덜 걸리는 것 같았다. 그래도 내려야 할 버스 정류장을 놓칠까 봐 몇 번씩 확인을 해야 했다.
정류장에 내리고 나서 이번에는 전에 갔던 길이 아닌 다른 길로 접어들었다. 번잡한 도로가 아닌 사잇길인데 가다 보면 극장이 나오겠지 싶어 굳이 앱을 찾지 않고 무작정 들어섰다. 영화 상영 시각까지 꽤 여유가 있어서 타박타박 걸어갔다. 추울 거라는 일기예보를 믿고 옷을 두껍게 입고 나왔더니 차가운 바람도 맞을 만했다.
익숙하지 않은 곳이다 보니 눈길이 닿는 모든 곳이 생소했다. 적당히 낡은 동네 분위기가 일본의 조용한 소도시 같기도 하고, 조지아의 한적한 시골 같기도 했다.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낯선 곳을 걷는 여행자가 되어 허름한 동네 곳곳에 온통 마음을 내주었다. 한 시간이나 걸려 와야 하는 불편함에 투덜거렸던 망설임이 슬그머니 사라졌다.
그렇게 10분 정도 걸어가다 보니 눈에 익은 극장이 보였다. 처음에 왔을 때는 지도 앱이 시키는 대로 따라가기 급급했었는데 이젠 그것 없이도 가고 싶은 대로 길을 선택할 만큼 작은 배짱도 생겼다.
어딘가 가야 하는 과정을 단지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만 여겼을 때는 그저 불편하고 거추장스럽게 느껴졌다. 짧고 간단하면 좋을 텐데 괜한 시간 낭비라고 여겼다. 그래서 결정을 해놓고도 취소를 할까? 하고 흔들렸던 것이다. 그 또한 짧은 여행으로 여기자고 생각을 바꾸니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고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 생각이 무엇이라고 현실은 변한 것이 하나도 없는데, 마음속에는 무언가가 몽글몽글 자라났다. 생각은 삶의 씨앗이라 내가 하는 생각은 내 인생에 무슨 씨를 뿌리느냐와 같다. 이런 씨앗을 뿌리면 이런 싹이 트고, 저런 씨앗을 뿌리면 저런 싹을 틔우니 내가 하는 생각의 방향이 어찌 중요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내 마음이 달라지고 나의 세상이 달리 보인다. 2025년을 보내는 마지막 날, 진한 쉼표 하나를 찍었다. 지금 먹은 생각이 내 삶에서 좋은 싹으로 피어날 수 있도록 잠시 숨을 고르며 깊은 차를 우리듯 내 생각을 우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