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도 성숙하게 한다

by 파란 해밀



카톡을 확인하려는데 친구로 등록된 사람들의 업데이트된 프로필이 대문짝만 하게 얼굴을 먼저 들어댄다. 보통 무심코 지나치는데 눈이 가는 사람이 있어 확인을 해보았다. 10년 전, 같이 근무했던 직원이었다. 그때가 40대 초반이었으니 지금은 50을 조금 넘겼을 것 같다. 그 직원에게는 왠지 간간이 마음이 갔다. 어느 날 문득 내게 던진 말 때문이었다.


"여자 친구를 만들고 싶어요. 삶이 덤덤해요. 뭔가 가슴 설레는 걸 다시 느껴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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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가 원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갖고 싶다고 해서 남의 것을 빼앗아서 내 것으로 만들 수 없고, 하고 싶다고 해서 그 욕구가 언제나 모든 것의 최우선이 될 수는 없다.


그도 그것을 알기에 슬며시 마음만 내비치어 보았을 것이다. 40대의 다소 안정된 환경에서 느끼는 지루함이 그런 생각이 들게 했는지도 모른다. 그날이 그날 같은 무덤덤함이 결국에는 우리 삶을 꽉 채우는 담백한 만두 속 같은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는 아직 젊은 나이였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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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그는 사주 카페에까지 가서 고민 상담을 했다고 했다. 그 상담사는 3년만 기다려보라 했다고 한다. 그 이후에는 사귀어도 된다는 얘기를 얼마 후에 그로부터 들었다. 그 말을 하는 그의 얼굴에는 기대에 찬 설렘 같은 것이 홍조처럼 피어 있었다.


3년을 기다리는 설렘으로 그 시간을 잘 버티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프로필 사진에는 온 가족이 함께 활짝 웃는 모습이었다. 그의 환한 표정을 보며 한때 휘청였던 일렁임에서 무사히 벗어났을 거라 생각하기로 했다. 괜히 나도 따라 빙긋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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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동안 어찌 한 두 번 휘청이거나 넘어지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지나고 보니 그런 일렁임을 겪고 나서 더 자랄 수 있었다. 자라고, 성숙하는 것은 아이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성인이 되거나, 심지어 늙어서도 사람의 사고는 새로운 것을 무한대로 흡수할 수 있고 탄력이 있다. 단지, 그것을 유연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굳은 사고방식이 문제이다.


위험한 유혹처럼 다가온 그 흔들림이 단지 한때 치기 어린 일탈이 아니라, 가족을 단단히 여미는 좋은 의미로 그의 가슴에 오래 남아 있기를 바란다. 처음, 아내를 만났을 때 그 설렘을, 어느 날 문득 또 삶이 무료하다고 느껴질 때 진통제처럼 꺼내 기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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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풋풋한 청년 같은 그도 어느새 진중한 중년이 되어 있었다. 삶은 그렇게 익어가는 것 같다. 삭고, 삭고, 또 삭으며 우리의 삶도 점점 깊은 맛을 내어가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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