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산에 가려고 집을 나섰다. 그동안 이런저런 일들로 바쁘기도 했고, 추운 날씨에 게으름을 피우다 보니 거의 한 달여를 가지 못했다. 모처럼 푸근해진 날씨 덕에 일찌감치 아침 일을 마쳐 놓고 설레는 마음으로 등산화 끈을 묶었다.
한적한 길은 그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여전히 조용했다. 이따금 한 두 사람, 등산을 마치고 오는 사람만 있을 뿐 번잡한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편안함이 곳곳에 스며 있다.
오랜만이라서 산을 오르는 길이 많이 힘들지는 않을까 했는데 몸은 기억하고 있었는지 평소와 다름없이 가뿐하게 올라갔다 내려왔다. 핸드폰으로 틀어 놓은 영어 이야기가 좋은 길동무가 되어 주었다. 사람 사는 건 어디나 다 똑같은지 외국판 "사랑과 전쟁" 같은 에피소드 하나를 듣다 보면 어느새 하산이다.
오늘은 매번 돌아가는 길이 아닌 다른 길로 가보기로 했다. 조금 더 둘러 가는 길로 걸어가고 있는데 반대편에서 걸어오고 있는 남자가 눈에 띄었다. 편안한 옷차림으로 작은 배낭을 멘 그도 근처에 산책을 하러 나온 것 같았다. 두 길이 만나는 지점에서 그는 나를 향해 가벼운 꾸벅 인사를 하며 싱긋 웃어 보였다.
나도 "Hello?" 하고 인사를 했다. 외국인이었다.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는 내가 사는 맞은편 아파트에 살고 있는 캐나다 출신 영어 강사였다. 부산에 있는 대학교에서 강의를 하는데 지금은 방학 중이라고 한다.
이곳에 산 지는 3년이 되었는데 조용하고 평화스러운 분위기가 너무 좋다며 열변을 토했다. 너무 조용해서 가끔 다시 부산으로 돌아갈까? 하고 고민하는 나와는 정반대였다. 그와 함께 길을 따라 걸으며 소소한 일상 이야기를 나누었다. 본인은 산책하는 것을 좋아하는 데 아내는 집에서 TV 보는 걸 좋아해서 혼자 걸으러 나왔다고 한다.
그는 내가 걷는 것을 몇 번 보았다고 하며 자주 나오느냐고 물었다. 오전에 특별한 계획이 없으면 오전에는 걷는다고 했더니, 본인도 그렇다며 우리는 갑자기 길동무가 되기로 했다. 전화번호를 나누고 산책하러 나올 때 서로 연락해서 같이 걷자는 약소한 동맹(?)을 맺었다.
50대 초반인 그는 청소년 같은 유쾌함이 있었다. 한국인 아내로부터 점심 호출이 오자 재깍재깍 응답해 주는 착한 남편의 매너도 갖추고 있었다. 본인은 절대 스토커가 아니라며 내가 사는 아파트 앞까지 데려다주고 다음에 또 보자는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집에 돌아와서 보니 어느새 그로부터 문자가 와 있었다. '만나서 반가웠고 다음에 곧 만나길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또 무심한 아들과 비교가 되려는 마음이 고개를 쳐들려고 하는 것을 꾹 눌렀다. 그런 아들마저 며칠 전 서울로 직장을 옮겨 떠나는 바람에 나는 한동안 마음을 다 잡아야 했다.
그 빈자리에 선물 같은 길동무를 만났다. 남의 아들이지만 그의 유쾌함으로 헛헛함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살다 보면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다. 빤히 내다보이는 길도 뜻하지 않게 어그러지기도 하고, 막다른 길 앞에서 막막하다가 생각지도 못한 조력자를 만나기도 한다.
지나간 60여 년을 돌아 보면 과연 내 뜻대로 된 것이 얼마만큼이며, 내 의지대로 이루어진 것이 얼마만큼인지 모르겠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길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그래서 한동안 헤매기도 했다. 이젠 이 길만 따라가면 무사히 도착할 것 같다가도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을 때도 있었다.
가당찮은 자신감으로 기어오를까 봐 그럴까? 삶은 이 나이가 되어서도 결코 내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늙어서 생각이 한결 편안해져서 좋다고 입방정을 떨었더니, 편안하지 말라고 제일 가까이 있는 아들을 뚝 떼어 다른 곳에 갖다 붙여 놓는다. 마치 약이라도 올리려는 것처럼......
갑자기 떠맡은 숙제를 끌어안고 끙끙대고 있으니, 너무 힘들까 봐 안쓰러운지 슬그머니 길동무 하나를 데려다 놓는다. 삶은 알 것 같다가도 모르겠고, 모르다가도 슬쩍 희망을 품기도 한다. 며칠 동안 뒤숭숭했던 마음이 키 높이 대로 꽂힌 책꽂이의 책처럼 조금 가지런해진다.
한동안은 새로운 길동무와 가 보지 않은 길을 더 걸어갈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