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들이 이직을 하게 되어 서울로 간 지 꼭 한 달이 되었다. 서울로 가기로 확정된 날부터, 이사를 하는 날까지 하루, 하루는 마치 중요한 결과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애가 탔다. 녀석도 나도 정작 겉으로 크게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또다시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낯선 길 위에 서 있는 것 같았다.
이 나이에 더 겪어야 할 새로운 일이 아직도 남았을까? 했는데 녀석은 내게 또 생소한 숙제를 던져주고 푸드덕 날갯짓을 하고는 거친 바람을 떨구어 놓고 갔다. 차로 한 시간이면 볼 수 있는 곳에 녀석이 있다는 것과 서울은 사뭇 달랐다. 하도 무심한 녀석이라 내가 이곳으로 이사를 와서 혼자 살아도 당연히 아무렇지도 않을 거라 여겼다가, 그동안 녀석의 존재나 온기가 결코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뒤늦게야 알았던 것처럼 말이다.
두 아들 모두 타지에 보내 놓고 보니 자식은 어쩌면 부모를 단련시키기 위한 존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저기 훌렁훌렁 벗어 놓은 옷가지처럼 그들이 던져 주는 상황에 부모는 속수무책으로 받아들이고, 단련되어야만 하는 객체인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어쩌면 나도 숱하게 내 부모를 흔들었을 것이다. 내가 미처 몰랐을 뿐...... 단 한 번도 나 때문에 힘들거나 아프다는 말을 않고 돌아가신 친정 엄마가 문득 보고 싶다. '엄마도 나 때문에 많이 힘들었지?' 하고 한 번도 건네지 않았던 말을 하고 싶다. '나도 엄마처럼 엄마가 되고 늙어 보니 이제야 비로소 엄마를 알겠다'는 말도 곁들여서......
미국에 살던 오빠가 몇 년 만에 다녀가면 길모퉁이를 다 빠져나가고 오빠가 보이지 않아도, 그 자리에서 길게 늘어진 해그림자처럼 서 있던 엄마의 텅 빈 눈동자가 삼킨 언어가 무엇인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오늘은 생소한 곳으로 간 녀석이 잘 적응하고 사는지 걱정하지 않을란다. 아무도 모르게 잘려 나간 두부 반 모 같은 내 마음만 보듬어 안을란다. 후루룩 떠난 녀석의 긴 그림자에 대고 살풋 눈이나 흘길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