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버스 정류장에서 우연히 남아공에서 온 아가씨를 만났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 있는 영어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마침 같은 곳에서 버스를 타고 내리면서 서로 알게 되었다. 문화센터에서 수업을 마치고 나와 같이 버스를 타고 오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친구가 되었다.
나이는 30살 이상 차이가 나지만 그것이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객지에서 혼자 생활하고 있는 그녀를 보며 혼자 여행하던 내가 떠올랐고, 이곳에 딱히 친구가 없던 그녀에게도 내가 적당한 하루 말동무가 되었다.
어느 날, 버스가 출발할 때까지 그녀가 오지 않아 감기가 걸렸다더니, 더 심해져서 못 오는 건가? 하고 걱정할 즈음, 다른 곳에 수업이 있어 먼저 가야 해서 오늘은 그곳에 가지 못했다며, 아들 둘로부터도 잘 받아 보지 못했던 세심한 문자를 그녀가 보내왔다.
나도 사정이 있어서 못 가는 날은 먼저 연락을 해서 알려주었고, 매주 월요일은 서로가 기다리고, 반기는 날이 되었다. 그러다가 수업 후에 집으로 초대해서 몇 번 저녁을 함께 먹었다. 둘은 두 나라의 역사, 문화, 정치적 이슈와 우리의 꿈에 대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했다.
내 생일에는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잊지 않고 보내주어서, 딸이 있으면 이런 느낌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남의 딸이지만 잠시 훔쳐 주머니에 넣은 기분이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쉽게 갈 수 있는 곳도 아니고, 가려고 꿈도 꾸지 않은 곳이었다.
그럼에도 오다가다 길에서 마주친 인연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어느새 그녀와 정이 들었다. 버스 정류장에 조금 늦게 도착하면 그녀의 얼굴에는 활짝 핀 복사꽃 같은 미소를 보이며 반겨주었고, 시간 맞추어 나타나는 그녀가 나도 반가웠다.
그런 그녀가 어느새 계약 기간이 만료되어 이직을 하거나 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동일한 급여로 난데없이 더 많은 수업을 해달라는 조건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대중교통으로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수업을 더 늘리는 것이 물리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한계가 있는 것 같았다.
계속 한국에서 일하고는 싶은데 아직까지 적당한 일 자리를 구하지 못한 것 같았다. 4월 초가 마지막 근무라고 하던데 잔뜩 걱정이 묻어나던 그녀의 얼굴을 보며 내 마음도 괜히 무거웠다. 어쩌면 돌아오는 4월이면 그녀와 헤어져 다시는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
1주일에 한 번씩 보는 게 뭐 그리 대수일까 싶었는데, 막상 그녀와의 이별을 생각하면 옷에 붙은 도깨비풀 가시처럼 쿡쿡 찌른다. 이제는 작은 헤어짐에도 생인손처럼 아린다. 나이를 먹으니 마음에도 근육이 자꾸 빠져서 그런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