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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해밀 Mar 10. 2021

도둑놈을 낳았다



2021. 03. 10.


큰 녀석이 대학생일 때다. 지금처럼 결혼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고 적당한 나이가 되면 누구나 결혼을 하는 보편적인 생각을 하고 있을 때이다. 나 역시 언젠가 때가 되면 녀석들도 결혼을 하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만 갖고 있었다. 

36년이 가까이 직장에 매여 늘 자투리 시간에 동동거리며 지내다 보니, 퇴직 후에는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시간에 쫓기지 않고 느긋한 삶을 살아보는 것이 내 남은 생의 최대 희망사항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기회가 되면 퇴직 후 나의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동안  간절히 하고 싶었으나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며 이젠 오롯이 내 삶을 즐기고 싶다고 누차 강조했다. 그것은 내게 남은 시간에 대해 녀석들이 침범하지 말라는 선전포고 같은 것이었다. 


"그러니까 너희들이 장가를 가더라도 엄마한테 아이 맡길 생각은 하지 마"
"네. 퇴직하시면 어머니 삶을 즐기셔야죠. 그렇게 하세요"

작은 녀석이 맞장구를 쳐준다. 

"그러면 어머니가 심심하지 않으시겠어요?"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인고? 옆에 있던 큰 녀석이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얼토당토않은 공략을 한다. 

"이놈아, 엄마가 왜 심심해? 하고 싶은 게 얼마나 많은데? 수 십 년 동안 꼬박 매어 있다가 이제 겨우 숨 좀 돌릴만한 엄마한테 넌 기다렸다는 듯이 애를 맡기고 싶냐?"
"하하하! 어머니가 심심하실까 봐 그렇죠"
"엄마는 혼자서도 잘 놀고, 할 일이 많으니까 그런 쓸데없는 생각은 안 해도 돼. 도둑놈!"




© OnlineMommyDiva, 출처 Pixabay



사내 녀석 둘을 연년생으로 낳았지만 다른 사람 손에 동냥(?) 하며 키운 셈이다. 친정어머니와 언니가 아니었다면 제대로 키울 수 없었을 것이다. 극도의 저질 체력에 툭하면 탈이 나는 허리로 두 녀석을 키우면서 내 등에 업어 본 게 대여섯 번은 될까 싶다.

그때 비하면 지금은 천하장사이긴 해도 걸레를 비틀어 짜는 거나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를 안는 것도 여전히 호락호락하지 않다. 내 사정을 일일이 입 밖으로 얘기하지 않으니 겉으로 멀쩡해 보이는 어미가 제 새끼 한, 둘은 너끈히 키울 수 있는 것으로 보였나 보다.

암만 그래도 이제 겨우 일에서 손을 놓고 좀 쉬어보려는 사람을, 기다렸다는 듯 바통을 넘겨줄 생각부터 계획(?) 하고 있었다는 것이 참으로 어이없다. 이렇게라도 호시탐탐 방어벽(?)을 치지 않으면 녀석은 어쩌면 당연하다는 듯 애가 생기는대로 맡기려고 할지도 모른다.

당장 일어날 일도 아니고, 아직 결혼에 뜻이 없으니 녀석이 말하는 장난감 선사형(?) 육아 문제가 코앞에 벌어질 일은 아니지만, 녀석의 깜찍한 발상에 결코 경계를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 jarmoluk, 출처 Pixabay




다른 건 몰라도 마트나 시장에 가자고 하면 발 벗고 나서는 남편이지만, 골프에 빠져 살다 보니 사람 구경하기가 어렵다. 대체안으로 남편 대신 큰아들을 가끔 짐꾼 삼아 데리고 간다.

마트에 가면 다 큰 어른이나, 덜 큰 어른이나 카트를 끌고 어디론가 사라지기 일쑤다. 필요한 물건을 담으려고 하면 어느 구석에 박혀있는지 사람 찾는 게 일이다. 마트에 온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고 본인들이 먹고 싶은 것, 필요한 것 고르느라 정신이 없다.

그나마 남편은 소소하게 맥주나 간식거리에 불과하지만 아들은 단가가 다르다. 고가의 면도기나 면도날을 서슴없이 담는다. 그러고도 더 담을 게 없나 눈을 희번덕이며 매장을 훑어보는 녀석의 눈빛이 평소와 다르게 빛이 난다. 인심 야박하다는 소리 들을까 봐 모르는 척 몇 번 계산을 했는데 번번이 다음에도 비슷한 행태를 보인다.


"야! 이런 건 네 돈으로 사야 되는 것 아냐? 너도 돈 벌잖아"
"하하하! 어머니 찬스!"
"도둑놈!"

마트에 짐꾼 하나 데리고 간다고 생각했는데 도둑님을 모시고 간 셈이다. 몇 번 주머니를 털리고 나서는 나도 눈치껏 녀석을 차단하는 스킬이 생겼다. 카트와 절대 멀어지지 않고 밀착 대인방어로 녀석의 움직임을 견제하다가 고가의 상품에 눈이 가거나 만지는 낌새가 있으면 카트에 담기 전에 시간차 공격으로 쇼핑 끝났으니 계산하러 가자고 밀어붙여 진로를 방해한다. 




© Tumisu, 출처 Pixabay



자식 눈높이(?)에 맞추다 보니 나도 점점 치사해진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제 것 귀하면 부모 것도 귀한 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딱 한 번 "어머니는 자장면을 싫다고 하셨어" 했다가 평생 자식한테 자장면 한 그릇도 못 얻어먹는 그런 어머니는 안 하련다. 그러면 너무 억울할 것 같아서이다.

"나는 허리 풀어놓고 아들이 사주는 자장면, 곱빼기로 두 그릇 먹을란다"라고 아들 찬스로 주야장천 아들 등에 빨대를 꽂아놓고 착취(?)하며 씩씩하게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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