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운의 숏컷

김지운 지음

by Roi Whang

그러니까 서른네 살까지 백수생활을 했다. 사실 그게 1~2개월이 제일 힘들지 2년 정도 지나면 리듬이 생긴다. 백수리듬을 타게 되면 사람이 참 부드러워지고 유연해진다. 성취욕 그런 게 없으니까 뭐 특별히 급할 것도 화낼 것도 없다.

어쨌든 나는 시나리오를 즐겁게 쓰는 편이다. 고통스럽게 쓴다고, 쥐어짠다고 되는 건 아닌 것 같다. 고민해서 안 나오는 건 나한테 없는 거라 생각한다.

말을 하려면, 귀를 열어야 한다. 남의 말을 들어야 자기 말을 할 수 있는 것이고, 연기란 게 들은 만큼 주면 되는데 남의 말을 듣지 않고 혼자서 하려니까 잔뜩 불필요한 힘이 들어가는 것이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 무언가 쫓아가게 되면 다른 무언가가 쫓아오게 돼 있어. 결국 우리 인생이란 게 쫓고 쫓김의 연속인 거지. 피할 길이 없어.

어느 맑은 봄날, 바람에 이리저리 휘날리는 나뭇가지를 바라보며 제자가 물었다. 스승님, 저것은 나뭇가지가 움직이는 겁니까, 바람이 움직이는 겁니까, 스승은 제자가 가리키는 곳을 보지도 않은채 웃으며 말했다. 무릇, 움직이는 것은 나뭇가지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며 네 마음 뿐이다.

빠져나와봐. 못 빠져나오겠지? 세상이 이래. 쟝글이야 쟝글. 힘 없으면 못 빠져나와.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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